안종복 경남민예총 이사장
남쪽 외딴 마을 언덕배기에 서면
나는 물이 되어 바다로 흐른다
바람결 같은 속삭임으로 취하게 하고
거친 혓바닥으로 구석구석 핥다
끝내 모진 물살로 세상을 정복한다
뒷산 호젓한 길 옆 소나무 그루터기에 앉으면
나는 작은 호수가 된다
차라리 호수가 좋아라
살랑되는 입김으로 가쁜 숨결 고르고
들뜬 청춘의 욕망 쓰다듬어 삭이는
잔잔한 물결이고 싶어라
아니면
당신이 올 듯한 오솔길
어딘가 후미진 곳에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뜬 눈으로 새벽을 맞는 하얀 옹달샘이라도
(아니야 나는 물일 수가 없어
당신은 가장 높은 곳
침범할 수 없는 곳에 있으므로
나는 바람이 되어야 하리)
실비 몰고 오는 숨결 같은 바람
장대비와 함께 오는 숨 막히는 바람이라도
황량한 거리의 쓸쓸한 찬바람이라도 좋으리
(언 계곡 백설 휘몰아 내가 그리는 마을 지붕 위로
마냥 흩뿌리는 그런 바람이라면)
그리하여 나는 계절풍이 되기를
말없이 가버리고
덧없이 돌아오는
잊힐 듯 잊힐 듯 잊히지 않는
어린 날 겨울밤의 이야기 같은.
김해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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