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관찰하고 내가 어떤 경우에 화를 내는지를 알아차려라. 그러면 마음속의 화가 서서히 사라지리라."

 이 말은 과거에 경험했던 한 정서적 사건을 털어 내지 못해서이거나, 또는 자신 안의 무의식에 항거하지 못해서 종종 트라우마에 끌려 다니며 고통 속에 빠져 살아가는 중생들을 향해 충고하는 법어(法語) 중 한 구절 입니다. 이 법어는 세상만사를 '있는 그대로 보면' 무의식 속의 응어리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무의식의 응어리인 트라우마야 말로 가장 질긴 인연이며, 미래와 관련된 가장 두려운 인연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과거의 어떤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나도 모르게 다시 화를 내고 실수를 합니다. 중생의 관점으로 보면 피할 수 없는 작용과 반작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과 '나의 트라우마'를 분리하면 연상 작용은 사라집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관점인 제법실상(諸法實相)입니다.

 부처님은 제법실상이라는 가르침으로 그 차이를 수정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제법실상이라는 말은 『법화경』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이것은 법화경에만 등장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옛날 중국에 불교가 도입될 당시 수많은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구마라즙 스님이 『반야경』, 『법화경』, 『중론』 등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제법실상' 이라는 묘하고도 현학적인 숙어를 등장시켜 여러 부처님 사고에 대한 방식들을 함축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제법실상은 그 뜻을 원어에서 찾아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 상관된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법실상을 한자로 번역하면서 하나의 술어로 만들어 놓고 보니 이것을 '제법의 실상'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제법은 실상이다'라고 보느냐에 따라 그 차이가 상당히 달라지는 결과가 드러납니다. 제법이라 함은 '존재'라는 것이므로 '제법의 실상'이라고 하면 '존재의 실상'이 되어 이것은 연기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제법은 실상이다'라고 하면 실상은 현상이고 또한 실상은 실재이므로 '현상 곧 실재'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이는 '차별 곧 평등', '번뇌 즉 보리'라는 사고방식과 연결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존재하는 것은 모두 상관관계에 있다고 하는 연기의 방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해석으로 풀이 되는데, 오히려 구마라즙은 이 두 가지 관점을 한데 모아 제법실상이라는 멋들어진 한 단어로 함축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형상으로서의 존재가 그대로 각각 모두 실재이다.」 또는 「현상 즉 실재」라고 하는 사고방식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는 존재가 형상이고,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으로 있게 하고 있는 영원한 것의 입장에서 보는 존재가 실재이고 보면, 그것은 똑같은 존재를 현상과 실재의 양면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중국의 천태지의 스님은 공(空)·가(假)·중(中) 삼관(三觀)의 이치라고 규정하였습니다. 한편 구마라즙은 사물의 존재나 생기에 대한 카테고리를 수집·보충·정리하여 열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열 가지 전체에 '이와 같은(如是)'이란 말이 있으므로 '십여시(十如是)'라 불렀습니다. 십여시란 모든 것이 상(相)·성(性)·체(體)·력(力)·작(作)·인(因)·연(緣)·과(果)·보(報)·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의 열 가지 방식으로써 존재하고 생기한다는 것입니다.

 이 십여시가 처음과 끝을 일관한 법으로, 다양한 사물에 구비되어 각각의 개체를 지탱하는 규범이 되고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다양한 사물 내지는 그것을 지탱하는 규범(諸法)의 구체적인 상태가 바로 십여시인 것입니다. 또한 사물을 십여시에 따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제법실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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