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부처님은 연기(緣起)의 진리를 깨달아 결국 죽음의 고통을 피해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모든 것은 연기에 따라 서로 의존하고 변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무아’와 ‘무상’의 이름으로 절대시 합니다.

모든 것들은 다른 어떤 것의 존재와 인연에 의존하기 때문에 ‘덧없음’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덧없음이라는 것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변화를 의미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아무리 작은 변화라 할지라도 변하는 것은 무엇이건 덧없음, 즉 무상의 법칙에 지배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부처님은 변화란 불가피하고 죽음은 단지 이 순환의 한 부분임을 인식했습니다. 또한 죽음의 길을 거꾸로 할 수 있는 어떠한 전능한 존재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은 맹목적인 희망, 즉 탐욕이 없다면 실망도 없으며,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안다면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욕심으로 소유하려하거나 부족하다고 탐욕을 가지는 악순환을 저지르지 않으며, 따라서 충족한 삶을 살게 된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그 깨달음으로부터 2천 5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풍요롭게 발달한 현대과학을 등에 없고 부처님의 진리를 거스르는 중생의 욕심은 무한히 펼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의 심성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만, 변화의 진리를 거부하려 청춘의 샘이나 장수를 위한 비밀의 처방에만 매달려 황폐해진 나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매양 저지르고 있습니다. 안티에이징이나 장수식품에 매달리는 등 습관적으로 진시황처럼 불사(不死)를 갈망하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더 이상 불사의 영약을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들은 인연에 따라 생기 되었고, 붕괴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영원히 순수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음으로써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열반(涅槃)이란 갈애(渴愛)에서 비롯한 생사의 윤회와 미혹의 세계에서 해탈한 깨달음의 세계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열반의 뜻은 단순히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멸진하여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일컫습니다.


부처님은 세수 80세가 되고, 성도 45년이 되는 해 2월 15일 입적을 하였는데 이를 무여열반 또는 반열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을 맞아 모든 사찰에서는 법회를 봉헌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갖습니다. 2018년 3월 31일이 그 뜻을 기리는 열반절이었으며, 불교 4대 명절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상응부 경전』 1:63 갈애편에는 “세상은 갈애에 의해 인도되고 갈애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는 것. 갈애야말로 일체를 예속 시키도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열반을 말씀할 때, 결국은 이런 예속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열반은 결코 공적무위의 소극적인 경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소멸되어야 할 것은 갈애입니다. 그리고 번뇌의 불꽃이며,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 꺼져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예속으로부터 자유스러운, 보리의 지혜가 완성된 경지인 열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속으로 끄달렸던 어제의 죽음이 바로 오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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