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 묘법연화사 주지 법지 합장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게 되면 온통 끔찍스러운 참사와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너무나 삭막하고 살벌해진 세태를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인가? 이러고도 그들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이러한 참담한 인간관계의 발단을 더듬어보면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탐진치 삼독이 그것인데, 정말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어리석음입니다. 무명(無明)에 가려져 비롯된, 어리석은 인간의 탐심과 성내는 마음이 큰 화를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감정이라도 그것이 나 자신이나 남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면 정신건강을 위해 또는 나의 인생의 보람을 위해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둘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씻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큰 화를 자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생의 무겁고 두꺼운 업장 때문에 감정이나 화를 씻어버리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중생에게는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은 비록 눈에 보이거나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수행을 통해서 마음을 닦아 헤맴과 불안을 없애고, 이로써 모든 표면적인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사물의 근본을 바로 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비로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생각한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누구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능해 집니다. 우리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이며 바로 해탈의 경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는가를 짚어보면, 거기에는 서양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 사상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에는 ‘자연지배’의 사상이 있는데 이는 신이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하는 권리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로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구약성서 창세기 1:27-28」”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끔찍한 근대 합리주의를 낳게 됩니다. 그 결과 자연의 철저한 이용과 인간의 자연지배는 수많은 공해의 발생과 생태파괴, 그리고 목적 달성을 위한 갖가지 수단도 허용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적 세력을 넓힐 목적으로 종교전쟁도 불사합니다.


 이처럼 자연지배 사상은 합리주의를 위장한 탐욕을 부추김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니라, 피 튀기는 탐욕의 확장과 약탈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행해지는 세상으로 만드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모든 실상의 생명을 존중하며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나아닌 너’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연기(緣起)의 이치입니다. 그리고 적절성을 나타내는 중도(中道)를 힘주어 강조합니다. 그 중도는 공(空)의 이치를 깨침으로 완성됩니다. 공이란 마음 비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의 경전인 『불설처처경』에서는, 다음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비운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다는 교훈을 일깨워줍니다.


 어떤 제자가 스승을 모시고 먼 길을 여행하고 있었다. 함께 길을 가던 제자가 문득 풀숲 속에서 눈부신 광채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제자가 풀숲을 뒤져보니 커다란 금덩이가 놓여 있었다. 제자는 주위를 살피다가 금덩이를 주워 슬며시 품에 넣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빨리 가시죠. 여기는 왠지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네가 금덩이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금덩이를 버리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제자는 얼굴이 빨개지며 얼른 금덩이를 버렸다. 그러자 제자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음이 편안해진 것을 느낀 제자는 스승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스승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금덩이를 버리고 나니 더 이상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빼앗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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