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남명문학상 소설최우수 수상작품

하정구
하정구

“이건 흡사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도적들이 내세우던 말과 같지 않은가.”
아마도 남명의 제자 오건이 임금의 역할을 강조한 내용임을 재삼 주청하지 않았다면 어떤 오해를 받았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여러 관료들의 뒷공론까지 무마하지는 못하여 공공연히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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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은 덕산으로 이사 오기 전, 합천에서 막다른 길에 서 있던 자신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들과 어머니를 차례로 잃고 극도로 피폐해진 심신은 서있는 것조차 힘겨워할 정도였다. 수렴청정과 외척에 둘러싸인 정국은 모든 가능성을 닫았고 길마저 막아버렸다. 길을 뚫어보려고 온 힘을 쏟아 부어 상소를 올렸지만, 진의는 묻혔고 신랄한 비난만이 암초처럼 남았다. 겨우겨우 노장을 빌어오고 자연의 순리에 의탁해 찾은 길이 지리산행이었고, 그 길은 남명에게 실낱 같은 희망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비난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길래 더 이상의 길은 나타나지 않은 채, 최후를 재촉하는 발걸음이 멈춰지지 않고 벽을 향하는 듯하였다. 이대로라면 벽에 부딪쳐 부서져버리거나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무리를 떠나 홀로 있노라니(離群猶是獨)
비바람을 제대로 막기 어렵도다.(風雨自難禁)
늙어감에 머리가 없어지고(老去無頭頂)
상심하여 속이 다 타버렸네.(傷來燬腹心)
아침에 농부가 찾아와 밥을 먹고(檣夫朝耦飯)
한낮엔 야윈 말이 그늘에서 쉰다네.(瘦馬午依陰)
다 죽어가는 등걸에서 무엇을 배우랴?(幾死査寧學)
하늘에 올라가며 떴다 가라앉았다 하리.(升天只浮沈)

고희(古稀)를 넘겼다. 두보의 말대로 ‘사람의 나이 일흔은 예부터 드문 일(人生七十古來稀)’이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지럼증은 더 심해지고 이어 왼쪽 다리도 점점 말을 듣지 않아 급기야 지팡이에 의지하여 절게 되었다. 게다가 이가 자꾸만 빠져 음식을 씹어 삼키기도 힘들어지고 머리카락도 나날이 줄어들었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제자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이 함께 지리산에 오르기를 원해 찾아왔을 때에는 지리산은커녕 집 밖 출입도 힘겨웠다. 남명은 경사자집(經史子集)은 물론이요, 천문·지리·의학·비결 등에 두루 박학다식하고 결기 있는 이지함과 함께 나서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고 젊은 제자 두 명을 보내 산길을 안내하라 일렀다.
사면초가에 들어앉아 사방으로부터 불쑥불쑥 날아드는 칼과 창을 정수리와 등판, 옆구리로 받아내는 사이에 부인 남평 조씨가 세상을 떠났다. 

-다음호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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