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남명문학상 소설최우수 수상작품

하정구
하정구

“그래, 맞느니라.”
“하오면 백성이 나라를 엎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온한 언사로 보이느냐?”
“그게, 그러니까…….”
남명은 다시 붓을 바투 잡았다가 풀며 붓 끝을 응시하였다.
“더 보거라.”

비록 그 위험이 백성에게 있지만(縱厥巖之在民)
어찌 임금의 덕에 말미암지 않겠는가?(何莫由於君德)
<중략>
임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편안하기도 하고(自我安之)
임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위태롭기도 하네.(自我危爾)
백성들의 마음이 위험하다 말하지 말라!(莫曰民巖)
백성들의 마음은 위험하지가 않다네.(民不巖矣

남명은 붓을 놓고 벌떡 일어나 마당을 서성거렸다.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 듯 손이 저절로 글의 기억을 따라 움직였다. 다시 그 글은 그의 가슴을 빠져나와 온몸에 피가 돌 듯 맴돌았다. 잠시 후 차석이 조용히 내려와 남명의 뒤에 섰다.
“하온데, 백성은 위험하다고 하셨다가 끝 부분에 위험하지 않다고 하신 뜻은 무엇인지요? 알 듯 하면서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남명은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을 보았다.
“백성이 위험한 것은 그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였지 않느냐? 제왕이 덕 없고 다스리기를 잘못하면 백성의 위험을 불러오는 결과가 되고 만다. 잔잔한 물이 성난 파도가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으니, 배를 뒤엎어버리듯 때로는 임금을 쫓아내고 나라를 뒤엎는 힘도 알고 보면 임금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니라.”
차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슴 속에 남아있는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였다. 다만 하늘의 영을 받들 듯 경건하게 천왕봉을 응시하고 있는 남명의 모습에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교형(絞刑)이니 유배(流配), 참형(慘刑), 멸문지화(滅門之禍), 부관참시(剖棺斬屍) 따위의 말들이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어지럽게 하였다.
남명의 상소에 다시 한 번 조야는 끓어 넘칠 듯 들끓었다. 얼마 전 온갖 높고 낮은 벼슬아치들의 비리와 병폐를 열거하며 ‘위급’이라는 말을 선조에게 올렸을 때도 그랬다. 시골 선비 주제에 알면 얼마나 안다고 온 나라의 관료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지, 저는 얼마나 깨끗하고 덕망이 있는지, 막상 조야에 발을 들여놓으면 처신이 얼마나 어려운지, 책 좀 읽은 것으로 남을 재단하고 평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비난에 비난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상 누구도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까지 남명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이런 망발이 있나. 이는 전하를 능멸하는 짓이 아닌가?”
“아무리 상소문을 통해서는 직언과 직간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너무 심하지 않은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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