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남명문학상 소설최우수 수상작품

하정구
하정구

실제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왜구가 침입해 온다하더라도 소소한 경우가 많아, 제자들 중에는 “노망나신 게 아닌가?” 하고 떠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금 당장이라도 왜구를 섬멸하러 짓쳐들어갈 듯한 남명의 기세를 믿고 따랐다.
명종의 뒤를 이어 임금에 즉위한 배다른 동생의 아들 선조(宣祖)도 계속 남명을 불렀다.
“큰 내를 건너려면 반드시 배와 노가 있어야 하고 큰 집을 지으려면 반드시 기둥과 대들보감이 있어야 하오. ……내 어린 나이로 왕위를 이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으니 도와주시오.”
“과인이 어진 이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 날로 간절해지오. 그대는 나이 많은 노인이니 이런 추위에 길을 나서기는 어려울 터.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려 언제든 천천히 올라오도록 하시오.”
하지만 한 번 굳힌 남명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선조가 내린 교서에 남명은 매번 사양의 뜻과 함께 하고 싶은 말을 강하고 날카롭게 전하였다.
“구급(救急)!”
남명이 선조에게 바친 한 마디였다. 수천, 수만 마디 말보다 더 정확한 말이었고 이보다 더 절실한 말이 없었다. 이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 낮은 말단의 벼슬아치부터 정승에 이르는 높은 관료까지, 심지어 임금의 실정과 폐단을 지적해야만 하였으니 다시 한 번 죽음을 무릅써야만 했다. 그러나 미리 예상했던 대로 정치개혁은 없었다.
남명은 또다시 붓을 들었다. 임금 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임금이 진정으로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려는 것이었다. 남명은 주저 없이 ‘백성은 위험하다(民巖)’고 썼다. 즐겨 쓰는 형식은 아니었지만 산문처럼 풀어지지 않으면서 시처럼 정서적 여운을 남기지 않는, 칼날 같고 정확한 형식이 필요했다. 곧 ‘부(賦)’ 자를 붙여 <민암부(民巖賦)>라 쓰고 숨을 고른 후 붓을 고쳐 잡았다.

배는 물 때문에 가기도 하지만(舟以是行)
물 때문에 뒤집히기도 한다네.(赤以是覆)
백성이 물과 같다는 말은(民猶水也)
예로부터 있어 왔으니,(古有說也)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民則戴君)
백성들이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네.(民則覆國)

옆에서 먹을 갈고 있던 아들 차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두운 세상, 차라리 글을 모르고 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어 부러 억지로 글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늦게 얻은 아들의 하루는 천렵과 산토끼 마냥 뛰고 굴리며, 근동의 아이들과 장난질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학인들 틈에 지내다 보니 듣고 본 풍월은 있었던 모양이다.
“아, 아버님. 그 글은 상소하실 글이 아니온 지……?”

-다음호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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