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남명문학상 소설최우수 수상작품

하정구
하정구


 “그래, 지리산에 들어갔다더니 어떤가?”
“어흠, 어떻긴. 산의 정기가 워낙 걸출하니 심신 수련엔 그만이라네.”
“허허, 부러우이. 우리 같은 관료야 항상 바쁘게 나대야 하고 이런저런 일에 신경 쓰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야. 자네야 얼마나 좋은가. 유유자적 산수에 취해 한가로이 인생을 즐길 수 있지 않은가.”
“유유자적? 전혀 그렇지 못하다네. 산에 산다고 속세와 연을 끊고 천하태평으로 사는 건 아니지.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 천리를 담론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치고 남들을 속이려는 자들이 우후죽순하고 있네. 게다가 그들은 상달만 추구하여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걱정이 태산이라 유유자적은 언감생심일세.”
출사하지 않고 은일하는 친구에게 유유자적이라니,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역시 경(敬)으로써 의(義)를 행하니 사림의 종장(宗匠)다우이.”
“종장은 무슨, 내 앞가림하기도 벅차다네.”
“참, 이번에 일재도 올라왔을 터인데, 만나보았는가?”
“며칠 전에 잠시 보았다네.”
“헌데, 듣자하니 이항이 예전에는 먹고 살기 어려울 정도로 궁핍하였는데 근자에 꽤 여유가 생긴 모양이더군. 사람들이 일재(一齋) 선생이라고 부르지만 재산을 늘리는 일에 재주가 있어 보이니 일재(一才) 선생이라고 하는 게 맞겠더구먼.”
이항과 만났을 때 사소한 의견차가 있기는 하였지만 또 다른 친구에게 그의 험담을 듣는 것이 못내 불편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입방아 찧는 것에 일일이 대꾸하고 맞장구칠 필요가 있겠는가. 더구나 오랜 친구 사이에 말일세.”
“꼭 그런 것만은 아닐세. 허무맹랑한 소리도 없지 않겠으나 오히려 객관적인 경우도 있지.”
“그런 비방이 붕당을 만들고 나라를 이 꼴로 만든 것 아니겠나?”
남명의 말에 아랑곳없이 이준경은 다음 말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이번에 자네와 함께 추천을 받았지만, 이항은 학문적 안목이 높은 반면 주견(主見)이 너무 편중되어 있는 병통이 있다는 게 저간의 평가일세. 자네도 주위의 평가를 흘려듣지 말고 부디…….”
“근간에 사직하고 돌아가려 하네.”
“응? 어허, 이 사람. 상서 판관이라면 좋은 자린데 어째서 봉직하지 않으려는가? 그렇다면 지평(持平)이나 장령(掌令)을 하고 싶은가? 내가 한 번 힘써볼까?”
남명은 노여움에 눈을 부릅떴다.
“자네가 나를 능멸하려는 것인가?”
“아니, 무슨 말인가? 나는 자네를 위해서 한 말인데.”
“허면 내가 높거나 낮거나 자리를 탐하지 않았음을 알 것 아닌가?”
-다음호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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