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남명문학상 소설최우수 수상작품

하정구
하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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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을 만났을 때도 남명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준경은 남명이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함께 한양에 머물 때 아침 저녁으로 친하게 어울려 지냈던 친구였다. 헤어진 뒤에도 남명에게 <심경(心經)>을 보내주어 우의를 다졌다. 그는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윤원형이 쫓겨난 이후 영의정을 맡았다. 남명이 한양에 올라온 이유도 이준경 같은 청렴한 인물이 영의정으로 있으니 조정에 나가 경륜을 펼쳐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임금과 여러 벼슬아치들을 하나둘씩 만날수록 고개를 가로젓고만 있는 것이었다.
사실 남명은 이준경에게 서운한 일이 있어 진작 만나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다. 친구 남명이 한양에 왔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간단한 인사말을 적은 서신만 보냈을 뿐 전혀 초청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남명은 지리산으로 돌아가기 직전 이준경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이준경에게로 안내된 남명은 일부러 친구 앞에서 넙죽 큰절부터 하였다.
“시골 사는 선비가 높으신 영의정께 문안드리오.”
이준경은 남명을 말려 앉혔다.
“이 사람아, 왜 이러시는가?”
남명은 여전히 소리 높여 친구를 존대하였다.
“이렇게 시골 무지랭이가 정승을 뵐 수 있게 해주시어 황공무지로소이다.”
“어허, 자네가 왜 이러는지 알았으니 그만하시게.”
“저는 다만 공사에 바쁘신 분께서 이렇게 미천한 사람을 만나주시어…….”
“어허, 이 사람.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이로군. 그만하면 알았다지 않나.”
그제야 남명은 자세를 바로 하였다.
“자네가 정승의 지위에 있다고 스스로 높은 체하여 시골서 올라온 친구를 끝내 한 번도 찾아주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나 이준경의 대답은 처음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난들 왜 친구인 자네를 만나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무엇인가, 그게? 친구를 만나기 어렵게 만든 것이.”
“조정의 체통 때문에 부득이 그랬던 것일세. 자네가 이해를 하게.”
“조정의 체통 때문이라고? 허허,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있나. 자네가 맑고 덕망 있기로 이름이 나 있어 그런 줄로만 알았더니, 조정의 법도 안에서만 그런 줄 미처 몰랐네. 체통 때문에 오랜 친구를 부르지도 못한다는 말은 듣느니 처음일세. 자네는 그 체통을 계속 지켜야 할 터이니 나는 그만 가보겠네.”
일어서는 남명을 이준경이 극구 붙잡아 앉게 하였다.
“고정하시게. 내가 잘못하였다지 않나.”

하지만 한 번 엇나간 심사는 어지간해서 바로잡히지 않아 삐걱거렸다.

-다음호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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