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구
하정구

 

 “충고? 몇 차례나 나한테 서찰을 보내어 했던 그 충고 말인가? 인으로 하는 학문이 아닌 실천하는 학문, 그리고 무예 수련을 계속하라고 하였고.”
“내가 오늘 자네 하는 걸 보니 내 충고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더군.”
“물론 자네의 말대로 백성과 나라의 장래를 위한 실질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네. 허나 학문하는 선비의 도리가 무엇이겠나. 학문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이항도 물러서지 않고 버티었다.
“그것은 결국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것일 뿐일세. 나라와 백성이 도탄에 빠진다면 과연 학문이 무슨 소용이겠나.”
“선비란 중서군(中書君, 붓)을 하인 삼아 저랑(楮郞, 종이)에 농사짓는 게 해야 할 일이거늘, 어찌 소용이 없다고 하는가?”
“내 할 일이라 하여도 다 때가 있는 법. 옥문(玉門)은 열릴 줄 모르는데 애먼 방망이 휘둘러야 헛힘만 들듯, 선비의 저랑 농사도 매한가지일 터.”
“허허, 이것 참. 비유가 개차반일세 그려. 그 같은 일은 전하와 각 직책을 맡은 관리들이 있잖은가.”
“유학자들뿐만 아니라 벼슬아치들까지 덕이 있는 자들은 모두 이기논쟁(理氣論爭)에 나서 출세와 명예만을 추구하고 나머지 물욕에 어두운 자들은 저마다 토색질이니, 다들 닫힌 옥문 앞에서 애먼 몽둥이 휘둘러 헛힘 쓰는 꼴이야, 쯧쯧.”
남명은 한숨을 내쉬며 답답한 심사를 토해내었다. 그러자 이항은 짐짓
“어허 이 사람, 말본새는 여전하이. 게다가 친구마저 비판하고 매도하려 하다니.”
“매도가 아닐세. 바른 길을 가라고…….”
“그런데도 내가 아직 친구로 삼고 있다니 참 희한한 일이야, 쯧쯧.”
“내 말이 말마다 모두 옳기 때문이지.”
큰소리로 술을 권하며 유야무야 넘어가버렸다. 그는 남명의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보다 뒤늦게 뛰어든 이기논쟁에서의 자기 역할이 더 중요하고 우선이라고 생각하였다.
한양 거리의 번잡스러움만큼이나 남명의 머리는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때마침 벼슬아치들이 일과를 파하고 일제히 퇴청하는 때라 온통 형형색색의 우동마졸(牛童馬卒)이 종횡으로 북적거렸다. 여기저기서 ‘에라― 게 들렀거라’ 하고, ‘쉬이― 게 물렀거라’ 하는 높고 낮은 벽제소리가 가뜩이나 느린 걸음을 더욱 동여매게 하였다. 크고 작은 가마에 올라탄 관리들이야 제멋에 거들먹거리고 구종배들까지 덩달아 소리 높여 활보하였으나, 그네들에게 가던 길 내어준 행인들은 조용조용 씩둑거리며 눈이 찢어져라 흘겨보거나 혹은 보이지 않게 침을 찍 내뱉었다. 남명이 선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이 가마 위에서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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