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남명문학상 소설최우수 수상작품

하정구
하정구

서른여덟 살 때 처음 중종 임금의 부름을 받은 후 벌써 여섯 번째 부름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더 이상 사양하지 못하게 내의원(內醫院)에 명하여 약까지 지어 보냈다. 궁중의 의약을 임금이 지어 보내게 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미 벼슬자리 물리치기에 이력이 붙은 남명도 이번만큼은 쉽지 않아 난감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려진 직책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부득이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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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향하기 전에 일재(一齋) 이항(李恒)을 만났다. 이항도 임금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온 터였다. 그는 남명과 젊은 시절 친구로 전라도 태인에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근골이 크고 강하며, 장난을 좋아하고 호방하여 무예 익히기에 힘쓰다가 서른이 넘어 어느 날 문득 그만두어 버렸다. 무과에 뜻을 두어 골목대장을 하고 남대문 지붕 위에 올라가 서까래에 매달려 지붕을 한 바퀴 돌고서야 내려왔던, 남다른 어린 시절을 뒤로 하고 학문에 몰두하게 된 연유에 대해 그는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다만 무예를 천시하는 분위기와 몇 번의 사화를 겪으면서 많은 갈등을 한 결과가 아닐까, 남명은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남명은 호탕한 웃음이 일품인 이항을 떠올리며 그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반가운 웃음과 뜨겁게 마주잡으리라 생각했던 손은 없었다. 이항은 많은 선비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옛 친구의 방문에 아랑곳없이, 스승으로 자처하며 답변을 계속하였다.
남명은 갑자기 손이 허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오래 전 친구를 이렇게 다 늙어 만났는데 반가운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다니. 이항이 왔다는 소식에 자신을 찾아와 가르침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을 제쳐두고 한걸음에 달려왔는데, 겉으로 아닌 체 하여도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어서 오시게, 남명.”
“그래, 일재 선생께서는 학동들 가르치는 게 다 끝나셨는가?”
뒤늦게 마주앉게 된 남명은 비꼬듯 말하는 자신을 느끼며 물었다.
“허허, 미안허이. 찾아오는 학동들이 너무 많아 다 물리칠 수 없었네 그려. 학동들이 많아야 나도 입에 풀칠을 하지 않겠나, 허허.”
정말 서당 훈장이라도 된 듯 이항도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내 오랜만에 자네를 만나 술 한 잔 하면서 회포를 풀어볼까 하였으나, 먼저 따져야 할 일이 있어 그것부터 따져야 하겠네.”
“그것 참, 고약한 일일세. 또 나한테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할 참인가?”
“친구로서 올바른 길을 알려주려는 충고일세.”
남명은 부러 찌그렁이를 부렸다.


-다음호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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