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남명문학상 소설최우수 수상작품

하정구
하정구

“중국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때에는 임금과 신하 사이에 격의가 없고 매사 진지하게 의논하였으므로 세상이 태평하였사옵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임금이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어 신하가 아첨하기를 좋아했으므로 세상이 어지러웠사옵니다. 임금이 현명하면 신하가 정직하고 임금이 어리석으면 신하가 아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옵니다.”
순간, 임금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지금 이 나라가 매우 어지러운 까닭도 자신이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이기 때문이라는 뜻이 되지 않는가.
남명도 임금의 용안이 급작스럽게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겉으로 백성을 위하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 같지만 천하의 아첨꾼을 일일이 들어가며 내칠 것을 말하고 싶었다. 제 집안과 자기 파당의 권력만을 생각하고 세세손손 이어주려고 정쟁을 일삼는 파벌주의자들을 탄핵하고 싶었다. 또 세상이야 어지럽든지 처참하든지 아랑곳없이 학문 한답시고 뜬구름 잡는 소리에 객쩍은 논쟁을 일삼는 무리에게 현실적인 방안 내어놓기를 명하라 하고 싶었다. 그런 자들을 모두 모아서 직접 땀 흘려 논밭 갈고, 피 흘려 야인과 왜구를 물리치며, 정말 높고 넓은 세상을 몸으로 체득하게 하고 싶었다. 세종 임금님처럼 대궐 안에 초가집을 지어놓고 몸소 거기에 기거하면서 백성들의 고초를 체험해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생활을 살피고 생각을 알려고 노력이나마 해보라고, 할 수만 있다면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다.
점점 뜨거워지는 피를 간신히 식히며 남명은 머리를 조아렸다.
“옛날 촉한의 유현덕(劉玄德)이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오두막을 세 번이나 찾아간 뒤에야 공명이 세상에 나왔는데, 그러고도 천하를 회복하지 못하였으니 그가 세상에 나와서 무엇을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와 같이 저처럼 덕이 없는 사람은 때가 되기 전에 벼슬에 나가서는 안 되고, 설령 나간다 하여도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을 것이옵니다.”
고하고 물러나온 남명은 안타까웠다. 벼슬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에는 임금이 능동적이지도 못하고 경륜을 펼칠 만한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임금은 너무 지쳐 있었고 너무나 작아져 있었다. 기린도 봉황도 아니었고 될 수도 없었다. 나라에 정도(正道)가 서 있을 때 녹을 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나라에 정도가 서 있지 않을 때 녹을 받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공자의 가르침대로 실천할 따름이었다.

 

 

 -다음호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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