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남명문학상 소설최우수 수상작품

하정구
하정구

“얼굴을 드시오.”
젊은 임금의 눈과 남명의 눈이 마주쳤다. 명종 임금의 용안은 밝지 못하였다. 아니 어둡다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이었다. 평소 연약한 체질인데다 조금만 일기가 고르지 못하면 감기와 함께 자주 흉격증(胸膈症)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과 여러 외척들 사이에서 마음고생이 얼마나 격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지난해 친정(親政)을 시작한 후로 이것저것 손수 결정하고 고심하느라 심신의 피로가 누적되었음이 한눈에 보였다. 그만큼 눈빛이 흐렸고 몸피와 달리 수척한 모습이었다.
“가히 듣던 바 그대로구려.”
임금은 훤칠한 키에 얼굴이 깨끗해 무엇이든 들여다보면 비칠 것 같은 남명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눈이 맑고 단정한 몸가짐을 보이면서도 굳은 의지와 위엄을 갖춘 것이 드러났다. 지금껏 궁궐에 무수히 드나든 벼슬아치 중에 저렇듯 높은 풍모를 가진 이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태산처럼 우뚝한 기풍에 눈꽃 같은 눈썹이, 마치 운무를 보듯 장엄하구려.”
“황송하옵니다, 전하.”
“그래, 내 그대를 보니 신선을 만난 듯 겸허해지는구려.”
“당치도 않으신 말씀이옵니다, 전하.”
“헌데…….”
임금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찌하여 관복을 입지 않고 포의(布衣)를 입고 왔는가?”
“신이 불민하여 그동안 전하께옵서 여러 차례 불러주시었으나 나오지 못하였사옵니다. 하온데 황송하옵게도 전하께옵서 손수 약을 보내게 하여 그동안의 불충을 깊이 속죄하기 위하여 이렇듯 상경한 것이옵니다.”
“아니, 그럼 이번에도 벼슬을 받지 아니 하겠다?”
남명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이미 한양에 당도하면서부터 몸에 느껴졌던 기류, 소문으로만 들어온 남명을 보겠다고 모여든 수많은 선비와 벼슬아치들을 통해 전해지던 가벼움, 또 임금을 배알하면서 보았던 그림자 등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상소를 하던 것과는 달리 직접 나라와 백성의 상황을 전해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급했다.
“저는 먼 시골에 엎드려 있어서 지금 세상일을 잘 모르옵니다. 허나 수십 년 이래로 백성들의 마음은 조정을 떠나 있고 군사들은 지휘를 따르지 않아 마치 물이 제 갈 길로 가버리는 것 같사옵니다. 마치 둑 터진 물처럼 민심이 흩어져 달아나고 있으니 마땅히 이들을 구제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실상이 그리 처참한가?”
“처참을 넘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옵니다.”
“허면, 과인이 어찌 하여야 한단 말인가?”
남명은 다시 숨을 돌렸다가 말을 이었다.
 

 -다음호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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