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민병식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 승리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지나가던 ‘칼립디스의 해협’과도 같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군이 승리를 거머쥐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도망가면서 신의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10년 동안 고생스러운 귀향길이 바로 그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도착한 ‘아이아이에라섬’에서 마녀 ‘키르케’를 만나 1년을 함께 보낸 후 선원들과 배를 타고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칼립디스 해협’을 지나게 되는데 그곳에는 세이렌의 마녀들이 살고 있었다. 그녀들은 천상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그 노래 소리에 홀려 넋을 잃고 듣다가 배가 바위에 부딪혀 난파되고 선원 들은 모두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때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고 자신은 부하로 하여금 자신이 몸을 배의 기둥에 묶게 하여 절대 풀어주지 말도록 함으로써 세이렌을 보면서도 안전하게 해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위의 이야기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옳음의 방향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조선시대의 유학자 남명 조식선생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남명 조식 선생은 늘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과 ‘성성자(惺惺子)’방울을 차고 다녔는데 경의검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불의를 칼로 자르듯 정의를 실천하려는 다짐이었고 성성자라는 방울은 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지는 자신을 깨우치게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설령 우리가 그분만큼은 못되더라도 닮으려고 배우려고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동물인 인간인 이상 유혹에 약해질 때마다 스스로 깨어날 죽비를 준비하고 필요할 때 사용해야 한다는 거다.

죽비는 내 마음 안에 있고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 그러나 때론 스스로 꺼내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꺼내지 못할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세상을 살면서 원망과 분노, 미움과 시기를 모두 없애고 구도자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은 못될지언정 반성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워지려고 하는 비움과 채움이 균형을 이루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의무이다. 특히, 점점 힘들어지고 메말라가는 ‘코비드’ 세상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시대정신은 따뜻하고 포근한 세상을 만드는 선순환의 출발일 것이다. 세상은 우리 모두 공동의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나부터 내 안에 숨어 잠자고 있는 사랑의 마음을 깨워야겠다. 어지러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있음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나 살기 바쁘다고 모른 체 하고 살았다면 세파에 흔들려 엇나갈 때 마다 마음이 내리치는 죽비 소리에 제자리를 잡겠노라고 다짐해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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