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남명문학상 소설 우수상 수상작품

이 산
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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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지에 도착하여 ‘남명 기념관’앞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나오니 며칠 전에 미리 예약을 해서 만나기로 한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류인태는 연로한 해설사와 인사를 하고, 길을 건너서 강가에 있는 작은 대문을 들어서서 보니 마당 가운데 이제 막 잎을 피우고 있는 오래 된 매화나무가 한그루 서 있고, 단청을 입힌 삼 칸으로 된 기와건물이 보였는데, ‘산천재(山天齋)’라고 적힌 현판이 보였다. 해설사가 동재(東齋)의 서너 평 되는 마루에 앉기를 권하여 나란히 앉았다. 70대 중반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해설사가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요?
  예, 교사로 밥벌이를 하다가 지금은 놀고 있습니다.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 두었소?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예, 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그러면, 남명 선생에 대해 공부나 해봅시다. 그래, 무엇이 궁금하여 이 먼 곳까지 찾아 오셨소?
  저의 처숙부님께서 주신 간단한 자료를 읽어 보았는데, 남명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학문의 요체가 경(敬)과 의(義)라고 합니다. 일생동안 많은 학문을 공부하셨는데, 왜 ‘경의’가 진리라고 하셨는지가 매우 궁금합니다.
  연로한 해설사는 류인태를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지으시더니 말을 이어갔다.
  경, 의라는 두 글자를 완벽하게 이야기 하자면, 오늘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오. 저도 그럴 실력이 없는 사람이오. 그러나 이렇게 찾아 오셨으니 제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좀 줄여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말재주가 부족하여 혹, 이해가 아니 될 수도 있을 터이니, 너그러이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남명 선생의 학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경의지학(敬義之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경’은 ‘의’에 의해 살아나고, ‘의’는 ‘경’에 의해 바르게 되는 것이라 합니다. 경의는 실제로 실천성의 맥락에서 본다면, 활경의(活敬義)로 융합되는 것이라 합니다. 『주역』의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 “경의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을 반듯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자(程子)는 이 말을 “군자는 경(敬)을 주로 하여 그 안을 곧게 하고, 의(義)를 지켜서 그 밖을 반듯하게 한다. 경이 확립됨으로써 안이 곧게 되고 의가 나타남으로써 밖이 반듯하게 된다.”고 주석을 붙여 놓았어요. 이 구절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직(直)’이란 마음을 곧게 하는 것인데, 이는 ‘경(敬)’을 통해야 가능하며, ‘방(方)’이란 외물과의 교섭 과정에서 일을 반듯하게 처리하는 것인데, 이는 ‘의(義)’를 기준으로 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경의(敬義)’가 이처럼 ‘직방(直方)’의 의미와 관련되어 흔히 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명 선생께서 허리에 차고 다니던 칼에는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라고 표현하였다고 하는데, 우선 ‘직(直)’즉 곧게 한다는 뜻의 글자를 ‘명(明)’즉 밝힌다는 뜻의 글자로 바꾸고, ‘방(方)’즉 반듯하게 한다는 뜻의 글자를 ‘단(斷)’즉 결단한다는 뜻의 글자로 바꾸었다는 점이 심상치 않은 변화를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을 곧게 한다는 의미의 ‘직(直)’만으로는 유학의 핵심사상과 직선적으로 관련시키기 어려우므로 남명 선생은 고심 끝에 ‘명(明)’으로 대체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명 선생이 대체한 이 ‘명(明)’은 『대학』 삼강령(三綱領) 가운데 첫 번째인 ‘명명덕(明明德)’에서 ‘밝힌다’는 의미로 쓰인 앞의 ‘명(明)’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중용』 20장에 나오는 ‘명선(明善)’의 ‘명(明)’과도 연결된다 합니다. ‘명선(明善)’은 지선(至善)이란 무엇이며 지선(至善)이 존재하는 곳이 어디인가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고, ‘명명덕(明明德)’은 인욕에 의해 가리어진 마음을 원래의 상태로 환하게 밝혀내는 것입니다. 결국 ‘명명덕’이나 ‘명선’의 ‘명(明)’은 학자가 마음을 수양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직(直)‘을 ’명(明)’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남명 선생의 학문의 입각점(立脚點)이 바로 『대학』과  『중용』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명 선생은 자신의 학문을 제자 정인홍이 쓴 「남명선생행장」에 이렇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만년에 특히 ‘경의(敬義)’라는 두 글자를 제시하여, 창문과 벽 사이에 크게 써 두셨다. 그리고는 일찍이, ‘우리 집에 이 두 글자가 있는 것은 마치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 것과 같아서, 만고토록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성현의 천언만어(千言萬語)가 결과적으로는 모두 이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어찌, 이해가 좀 되십니까? 제가 남명 선생의 후손이온데, 나이 일흔이 넘어서야 겨우 아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허허허······
  류인태는 그 말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윤곽이 잡히는 기미가 있어 보였다. 반드시 다음에 ≪대학≫과 ≪중용≫을 읽어 보리라 생각하면서 교사로서 가장 중요하고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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