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간  향토사학자
김종간 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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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 준은 고려 충목왕 2년~조선 태종 5년(1405)의 고려 말조선 초기 문신으로 본관은 평양, 호는 우재(齋), 아들 대림(大臨)이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慶貞公上)와 결혼, 정도전과 함께 개혁파에 속하면서 이성계 이방원의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1382년 병마절도사 최 영의 천거로 경상도에서 왜구 토벌에 소극적이던 도순문사와 병마사를 징벌해 기강을 세웠다. 그 뒤 이성계를 만나 개혁을 도모하여 이인임, 조민수를 탄핵하고공양왕을 옹립, 이성계, 정도전 등과 중흥공신에 서훈되었다.
1392년 정몽주의 탄핵으로 정도전 등과 체포되나 정몽주는 죽고 그는 풀려나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1등으로 문하우시중이 된다. 이성계, 이방원의 편으로 크게 출세하며 정도전과는 갈라지고 이방원이 왕에 오른 뒤 좌정승, 영의정부사 등을 거쳤다. 사학, 경학, 시문에 능한 학자이기도 했다.

무제(無題, 김해 노래) - 정이오鄭以吾

三叉水群蘆花雪 삼차수반노화설
七友山前楓葉秋 칠점산전풍엽추
畵柯中流簫鼓咽 화가증류소고인
一區仙敎是金州 일구선치시금주

삼차강 물가에 갈대꽃 눈처럼 날리고
칠점산 앞 단풍잎은 가을이라,
그림 같은 큰배가 중류에서 퉁소와 북소리 울리니
한 구역 신선의 경치는 바로 금주(金州) 땅이로다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신 아홉 번째

작가 정이오는 고려 충목왕 3년 조선 세종 16년의 인물로 본관은 진주 호는 교은(隱), 우곡(谷)이다. 고려 공민왕 24년(1374) 문과 급제하고 1376년 예문관 검열이 된 후 여러 직을 거쳐 1398년 초 준(趙浚), 하륜(河예) 등과 『사서절요(四書節要)』를 찬진했다. 1403년(태종3)에 대사성, 1409년 동지춘추관사로 『태조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1413년에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젊어서 이 색, 정몽주 등 문인과 교류하였으며 늙어서는 성석린(成石麟), 이 행(李行) 등과 교류했으며 죽은 뒤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정이오와 교류했던 조 준, 하 륜, 정몽주, 이 행 등은 모두가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김해부에 와서 기문(記文), 시(詩) 등을 남겼으니 이보다 더한 선물이 없을 것이다.

무제(無題, 김해 노래) - 권근權近

海邊及客方留滯 해변축객방유제
天坪高樓可上臨 천반고루가상임
一代風雲成太古 일대풍운성태고
千秋陵墓到如今 천추능묘도여금

燕飛簾幕黃梅雨 연비렴막황매우
솔轉園林綠樹陰 앵전원림녹수음
寂寞壯心驚節序 적막장심경절서
幾回西望費長吟 기회서망비장음

해변에 쫒겨 왔으니 체념하고 머물고
하늘가 높은 누각 오름직 하여라.
한시대의 풍운은 아득한 옛일이 되었는데
천년의 능묘는 지금의 것 같구나.

장맛비 내리는 장막 밖으로 제비가 날고
푸른 숲속에서 꾀꼬리가 울고 있네.
적막함에 굳게 먹은 마음도 철 따라 놀라며
몇 번이나 서쪽 하늘 바라보며 긴한숨 쉬었는가.
※ 『읍지』에 생략된 것이 많아 양촌집(陽村集)』에서 채록하여 보충하였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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