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간  향토사학자
김종간 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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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충숙왕 5년(1318)~우왕1(1375)의 인물로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담양, 호는 야은(隱)이다. 충혜왕 때 과거에 급제해 제주사록으로 임명되고 1347년(충목왕 3년) 기황후(皇后, 고려 출신의 중국 황후)의 친동생인 기삼만(奇三萬)의 죄를 다스리다 그가 옥사하여 잠시 옥살이를 하였다. 1343년 홍건적의 난 때 남행하는 왕을 호종하여 2등공신이 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정당문학, 문하평리 등에 올랐다가 이첨, 이인임 등의 사건에 휘말려 귀양 가던 중 1375년에 죽었다.
위의 시는 그가 경주판관으로 있을 당시 가까이 지냈던 김해의 기생 옥섬섬(玉織織)에게 준 시로, 원 제목은 '증김해기옥섬섬(贈金海妓玉織織)'이다. 자세한 사연은 다음의 정몽주의 시에서 알 수 있다.

부차운(附次韻, 운을 잇다) - 정몽주鄭夢周

此生何日眼還靑 차생하일안환청
太古遺音意自明 태고유음의 자명
千載佳人滄海月 천재가인창해월
重遊胡得獨無情 중유호득독무정

이 생 어느 날 눈이 도로 젊어졌나,
태고의 의미가 가야금 소리에 절로 밝아졌네.
천년 아름다운 사람 창해의 달빛이라
다시 함께 노닐거니 어찌 홀로 무정하다 하리오.

칠점산(七點山) - 정몽주鄭夢周

七點山前暮靄橫 칠점산전모애횡
三叉漢口緣波生 삼차도구록파생
春風二月金州客 춘풍이월금주객
正似江南路上行 정사강남로상행

칠점산 앞 짙은 안개가 비켜가고
삼차강 나루 어귀에 푸른 파도 일고 있다
봄바람 부는 2월에 금주의 나그네 되었는데
마치 강남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 같구나.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쉰 두 번째

작가 정몽주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는 만고의 충신이다. 조선 3대 임금에 오르기 전 태조 이성계의 아들이었던 이방원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시(詩)를 남겼다.
1392년 선죽교에서 이방원 일파에게 추살되었다.
작가는 '연자루' 시와 분산성 기문'을 비롯해 김해에 대한 작품을 여러 편 남겼는데,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앞의 시는 전녹생 시(詩)의 운(韻)을 좋아 쓴 것인데, 자서(自序)를 달아 시작(詩作)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옛날 야은선생이 계림판관으로 있을 때 김해의 기생 옥섬섬에게 준시인데, 10여 년 뒤 야은이 합포진(合浦鎭, 지금의 마산)에 부임하니 옥섬섬은 이미 늙어 있었다. 그래도 옥섬섬을 가까이 두고 날마다 금(琴)을 타게 했는데 내가 그 소식을 듣고 그가 쓴 시의 운을 따라 4수의 절구(絶句) 시를 지어 벽에 걸어두게 했다."라는 내용이다.
두 번째 시는 “춘풍 2월 금주의 객”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정몽주 당시는 김해부(金海府) 시대였다. 금주(金川)'는 고려 현종 3년(1012)부터 원종 12년(1271)년 까지 사용한 명칭이므로 시적인 표현이라 이해할 수 있다.

김해 칠점산(金海七點山) - 안 축安軸

海門千里水浮空 해문천리수부공
七點靑峯香露中 칠점청봉묘로중
此是琴仙樓息處 차시금선루식처
乘舟且莫過恩恩 승주차막과총총

바다 천 리 물은 허공에 떠 있는데
일곱 개의 푸른 봉우리 안개 속에 아득히 멀구나.
여기가 금선(琴仙)이 누각에 쉬던 곳
배 타고 지날 때는 너무 서둘지 마시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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