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간  향토사학자
김종간 향토사학자

 

 

 

 

 

 

남포범주(南浦帆舟) - 안혁중安赫重

佩酒携朋問買舟 패주휴붕문매주
南來第一此明區 남래제일차명구
白鷗驚起緣蘋岸 백구경기녹빈안
彩鷄浮來明月洲 채익부래명월주

借問蒼江今夜興 차문창강금야흥
何如赤壁昔年秋 하여적벽석년추
茫茫皆点三叉裏 망망칠점삼차리
隋處風流資意遊 수처풍류자의유

술병 차고 벗 이끌어 배 빌려 탄 곳
남쪽에서 제일가는 명승지 남포라네.
갈매기는 파란 마름풀 언덕 위를 나르고 화려한 배는 달빛 어린 언덕으로 떠간다.

오늘밤 푸른 강에서 느끼는 이 흥겨움 적벽강의 옛 가을과 같을까.삼차강의 칠점산은 아득하고풍류는 곳곳마다 정겨움에 넘친다.

작가는 김해 진례 출생으로 쌍괴당(雙槐堂)이라는 호(號)를썼는데, 시례리 마을에는 당시 심었던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지금도 서 있다. 1774~1855년의 인물로 효성이 지극했고 덕망이높았다.

삼차풍범(三叉風帆) - 배진희裵晋麟

洛水三分萬折流 낙수삼분만절류
精卵無數順風浮 포범무수순풍부
惟一漁翁垂釣處 유일어옹수조체
虛舟竟日繫蘆洲 허주경일계노주

낙동강물 세 갈래로 나뉘어 만 굽이로 흐르고
부들풀위 수 많은 돛단배 순풍에 떴다.
오직 한 사람 고기잡이 늙은이 낚시 드리운 곳에
빈배 하루 종일 갈대 섬에 매어 두었네..

작가 배진희는 『읍지』 학행(學行)조에 실려 있는데 호는 통암이다. 계당(溪堂) 류주목(柳疇陸, 1813~1872. 조선 후기의 학자, 저술가로 경북 상주 출신. 서애 류성룡의 9세손)을 스승으로 삼았고 역경(易經)에 통달하였다고 적고 있다.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쉰 번째

낙동강이 지금의 대동면 대동수문에서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예안천, 주중천, 수안천을 합류한 후 부산시 강서구의 대저동과 강동동 사이로 평강천을 흘려보내고 다시 불암동으로 항하니 삼분수, 또는 삼차강(三叉江)이라 불렀다. 지금은 서낙동강이라 부르지만 삼차강은 낙동강 둑을 쌓기 전까지는 세 갈래 물길로 크고 작은 섬과 갈대, 부들풀 등과 어우러진 영남 제일의 수변 경승이었다.
일제 강점기 낙동강 제방 건설 후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곡창 김해평야를 살찌우는 생명수로 가치를 더하였으나 지금은 부산시와 김해시를 경계하는 강이요 김해평야의 크고 작은 물길은 개발에 신음하고 있다.
영남 제일의 곡창이었던 김해평야는 아득한 옛날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1천 3백리를 흘러오면서 경북의 중앙을 관통하고 창녕에서 경남으로 들어온다. 가야산의 정기를 담은 황강을 만나고 지리산의 정기를 담은 남강을 합류해 밀양 삼랑진에서 밀양천을, 양산 물금에서 양산천을 만나 흐르다 남해에 들기 전 우리 김해의 대동에서 오른쪽으로 새로운 물길인 서낙동강이 되어 김해의 신어천 조만강을 만나 녹산 수문을 빠져 나간다. 본류와 서낙동강 사이에 거대한 삼각주(三角洲)를
만들었으니 바로 김해평야였다.
김해평야는 김해 사람의 역사요 문화였다. 땀과 희열이었고 분노와 아픔과 슬픔의 현장이기도 했던 김해평야는 1970년대부터 대변혁을 맞게 되었다. 평야의 중심을 가로질러 들어섰던 비행장은 새로운 부지를 찾아 영남 일대에 광풍을 일으키더니, 결국 “확장이 신공항”이라는 논리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나머지 대부분의 곡창지대는 에코 시티(Eco city)라는 예쁜 이름 아래 파헤쳐지는 정도가 아니라 땅의 거룩한 임무, 주곡인 쌀과 각종 채소 등 농산업 보고(寶庫)로서의 운명을 다한 채 죽음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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