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경(시인. 수필)
안진경(시인. 수필)

 

자다 깬 새벽녘 그제 집 대문 앞에 웅크리고 죽은 두꺼비가 생각났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영상은 조각상 같은 그 두꺼비를 본 순간부터 계속 내 머릿속에 무의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두꺼비는 내가 꽃밭을 가꿀 때 자주 만났던 녀석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녀석일 수도 있습니다만 하고 싶은 얘긴 느릿한 네발로 최후까지 기어갈 만큼 기어가다 마치 수도하는 수도승의 거룩한 행위처럼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그 죽은 녀석의 지켜보지 못했던 최후 그리고 그 주검 주위를 정적 속에 멈춰 서게 했던 종말입니다.

그 녀석의 몸체를 개미들이 들러 붙어있다거나 혹은 죽음의 정령인 파리들이 바짝 붙어 낮은 비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두 종류의 행위 즉 죽음의 행태와 혹은 살아 있는 것의 행태가 역겹다기보다 어떤 애잔함과 비애 오히려 성스럽기까지 하는 어떤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죽음과 삶의 연결 고리, 순환, 혹은 연속성을 떠올리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 두꺼비와 개미 그리고 파리들이 한 데 뭉쳐진 이미지는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좀 전에 자다 깼다고 말씀드렸지요. 꿈속에선 묵정밭을 일궈 놓은 둘레에 심어 놓았던 옥수수가 하늘을 향해 전봇대처럼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옥수수나무 끝에는 안테나 같은 수술도 있었는데 꿀벌들이 거기에 매달려 잉잉거리고 있던 것도 생각나네요.

꿀벌은 맨 꼭대기 안테나에서 잉잉 대는데 가지 옆에 박히듯이 매달린 옥수수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알맹이가 커져가는 가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꿀벌들이 안테나 끝에 매달려 먼 우주 외계의 전능자들에게 신호를 보냈는지도 모르지 않겠어요.
옥수수가 자랄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해달라고.

그 밭엔 호박과 가지 그리고 토란과 콩 부지깽이 나물과 땅콩과 해바라기, 접시꽃이
공존하는데 이들은 자기들이 한데 자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던 것 같네요. 꿈속에서 .

접시꽃을 보면 왜 '당신'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지 모른척해도 알고 있습니다. 한 때
유행하던 접시꽃 당신이란 도종환의 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맞습니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피어 있는 진분홍 접시꽃 한 그루를 보고 마치 당신이 보고 싶은 이유를 찾기라도 하듯 행상을 떠난 어미의 귀가를 기다리며 굵어지는 눈 발속에 맨 발의 까치발을 들고 키를 조금 늘려 동구 밖을 백 번도 넘게 바라봤다던 옛날에 읽은 어떤 남자의 성장 동화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거기까지 생각이 넓어지자 갑자기 내 울대는 개구리 울음주머니처럼 불룩해졌고 나는 금세 숨죽여 울 수도 있을 것 같아 꿈속을 빠져 나오기 위해 아등바등 기를 써 눈을 떴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내 꿈속의 접시꽃나무는 대문 보다 조금 높게 솟아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날이 밝기엔 아직 두어 시간이 더 남아 있습니다.
잘 자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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