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한(시인. 문학평론가)
박철한(시인. 문학평론가)

 

우리나라에서 호적제도가 시행된 것은 고찰해보면 일본 도다이지(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서 발견된 신라 촌락문서가 효시라 한다. 이는 조선 시대 고종까지 이어졌다 한다. 이렇게 오랜 역사가 있지만, 잦은 외침 등의 문제로 중단 및 소실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던 중 1912년 일제 식민지 시대 [조선민사령]을 제정되었으며, 10년 뒤 1922[조선호적령]을 전국적 시행함으로 호구조사에 활용되었다. 그러던 중 여성평등의 원칙에 근간하여 2008년도 호주제의 폐지되고 가족관계 증명제가 시행됨으로 기억된다. 하여 모든 국민은 출생 및 입양 또는 결혼과 사망 등의 변화가 있을 때 주거지 읍면동사무소에 기일 내 신고함이 의무이다.

 

내가 직접 신고해야 할 첫 번째 변화의 사유가 아내와의 결혼이었다.

 

군 제대 후 직장생활을 하던 때였다. 추석 연휴 하루 앞날로 기억된다. 퇴근하여 완행버스를 이용 집에 도착하니, 툇마루에 걸터앉으신 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시던 60대 중반이신 할머니께서 나를 보시며 울음을 터트리시며 건네주시는 메모지를 받아 읽어보니, ‘엄마 의료원 응급실에 가니 택시 타고 뒤따라오라!’라는 아버지의 필체였다. 메모지를 바닥에 던지고 택시를 이용 응급실에 도착하자, 마침 정밀검사가 끝난 상태였다. 응급 의가 지주막하 출혈로 수술이 필요합니다. 간호사가 서류 준비하니 빨리 대학병원으로 이송하세요!”말을 남기고 흰 가운의 휘날리는 바람에 볼이 차가웠다. 이렇게 어머니는 서울 Y 대학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으나 거동을 못하심과 혈관성 치매로 인지력까지 상실된 상태였다. 따라서 누군가의 수발이 필요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두 동생은 군 복무 중이었고, 형제 모두 여유롭지 못하였다. 그래서 집에서 생활하던 내가 봉양하여야 하였다. 신이 나의 생을 방해하는 것이었던가? 마침 7년간 교제한 여자 친구도 성폭력의 피해로 더는 관계유지가 어렵다는 이유로 떠났다. 그래서 처가에 승낙도 없이 아내가 발급해온 낱장의 호적초본 한 장을 동료 면사무소직원 두 명의 보증으로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어떠한 일이던 이렇게 쫓기듯 급하게 추진하면 엉킴이 발생하는 듯하다. 부산에서 생활하던 형의 귀향으로 우리가 분가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 조그마하고 낡은 빌라를 구매하여 생활한 지 5년 언저리로 기억된다. 간암으로 투병하시던 장인께서 별세하셨다. 누구든 이곳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래서 생에 노력으로 얻은 것(동산, 부동산, 채무 등)을 남기고 빈 몸으로 떠난다. 이때 유족들이 유품 정리 또는 상속의 민사적 법률행위가 필요하다. 하여 처가에서도 장례를 마치고 유품정리를 하게 되었다. 옷과 휴대폰은 재활용 수거통에 넣었고, 그다음 많은 자산은 남기시지 않으셨으나, 자산 관리의 목적으로 부동산 등기명의 변경이 필요하다. 이는 '사망신고 6개월 이내' 하여야 한다. 만약 이 기회를 놓이게 되면 해당 부동산의 법률행위를 못한다. 따라서 등기명의 변경은 경험이 있는 내가 맡기로 하였다. 그 후 처남과 아내가 장모님께 일괄상속에 무리 없이 협의하였음에 잘 진행되는 듯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하였던가? 상속 명의 변경에 많은 서류가 첨부된다. 그중 망자(명의인)와의 관계입증을 위하여 가족관계(, 호적)와 제적부가 필수이다. 이의 량은 가족 수에 비례한다. 이때 아내의 가족관계를 발부받아 확인하던 때였다. 전 호주(장인)와 연결이 끊겨 공부상 부모를 잃은 미아 상태였다. 따라서 아내는 어떠한 법률적 권한이 없음은 자명하였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 아내는 상속 또는 포기의 법률행위를 못한다. 정당한 법률행위를 위하여 끊인 호적(가족관계)연결이 선행이 필수였다.

 

그를 위해 우선 원인분석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현 호적지에서 혼인 신고에 접수한 아내의 호적초본 내용 확인하였다. 전에 근무하였던 인연으로 간단히 문서를 받아 비교하니, 원적지에서 발행한 원안의 내용으로 이기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이것으로 결과 분석은 어려웠다. 하여 아내 전() 호적지인 G시에 문제의 호적을 '공용' 발급 의뢰한 문서를 받아분석 하였다. 그 결과 당시 어떤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아내보다 2년 먼저 출생한 처남의 출생신고와 동시하였는데, 그 때문인 착오였던가? 주민등록번호 오기에서 발생임을 확인하였다. 이 때문에 호주와의 연결이 끊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회생하기 위하여 간단하지 않았다. 두 종류의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담당자가 파악한 내용을 자율적 시행하는 '직권수정'이다. 두 번째로는 정부를 피고로 한 행정소송 제기를 통한 '행정명령에 의한 수정이다. 그러나 직권 수정은 원적지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확인하였다. 또한, 가족관계(호적)의 업무는 법원의 지휘권이 강한 업무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원적지 G시 담당자가 "직권 수정을 거부함은 물론 원적지가 담당이기에 처가의 거주지 법원에 행정소송 소장 접수하라!"는 안내만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중증 장애의 신체로 그곳의 왕래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하여 간단한 행정소송 절차를 변호인을 수임한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생각으로 며칠 고민하였다. 답을 얻었다. '자치단체와 달리 법원은 국가직공무원이다.' 에 근거하여 다음은 담당지역의 해석이 필요했다. 궁리 끝에 '담당지역'이란 당사자가 거주하는 곳으로 압축한다. 그렇다면 거주하는 곳에서 수정해야 한다. 라는 법리적 유권해석이 가능했다. 희망적 기대감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 즉시 법원의 담당직원과 사안과 내 생각을 전화로 전달하였다. 담당 직원 '서류의 확인이 필요하다며 관계 서류를 지참 방문을 제안(안내)" 하였다. 따라서 그동안 준비한 서류를 지참 콜택시를 이용 법원을 방문하여 서류를 제시하며 부대설명을 하였다.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하던 담당자 "이는 당시 담당 공무원의 착오 또는 실수로 파생됨이 인지되며, 당시 담당은 정년퇴직으로 연락 불가합니다. 따라서 제가 직권 수정해 드리겠습니다.“ 하며소장을 작성하시고, 맞은편 은행에서 7,500원의 수입인지를 구매하시어 부착해주시면 됩니다." 라고 간단하고 명쾌한 답변을 들었다. 그 순간, 아내는 수입인지 구매를 위하여 출구로 나가고, 나 홀로 친숙한 서식의 소장을 작성하였다. 완료한 소장의 오른쪽 아랫부분 옆구리 공란에 아내에게 건네받은 수입인지를 마치 새색시 볼에 연지곤지 찍듯 붙이자, 마치 새색시가 기쁜 마음으로 밝게 웃는 미소가 얼굴에 가득 차 빛나는 소장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완성한 소장을 담당자에게 전하며, 해답을 찾은 기쁨을 옆에 서 있는 아내와 대화할 때였다. 담당자가 "수정한 서류입니다. 확인해보세요."라는 말에 데스크 위 놓인 한 장의 A4용지에 얼굴을 박은 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담당자가 "오늘 주신 서류는 소장에 첨부 판사님의 결재 후 이곳에 보관됩니다."하였다.

 

이 말에 고마움과 동시 원적지인 G시의 담당자는 이러한 행정절차를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과 부실한 안내로 며칠을 고민하던 무거운 짐을 한 방에 날려주었다. 이는 공무원의 업무적 과실로 발생한 사건을 굳이 국민에게 시간과 금전적 투자는 물론 심리적 부담을 사전 없애는 모범 공무원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렇게 친절하고 소신 있는 공무원이 전국의 공공기관에 가득 참 기대해 본다. 이렇게 고마운 공무원 한 명의 도움으로 서류상 미아였던 아내에게 부모님을 찾게 되었음은 물론 잃었던 상속권을 취득 그와 동시 포기하는 웃지 못할 사례가 있었다. 이후 계획대로 장모께 일괄 상속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렇게 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도록 협조한 청렴한 법원 직원에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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