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해(시인. 수필가)
박선해(시인. 수필가)

6월 1일 송담서원, 진초록이 더욱 담백한 광장 안으로 하얀 구름이 평화롭게 흐르는 하늘이다. 남명문화정신연구원이 주최하여 관계자분들만으로 사충신 및 의병제 추모제례를 봉행했다. 임진왜란 시 김해성을 지켜 순국선열 의병 사충신에 마음 담아 위령하였다. 지역 큰 어르신들께서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시 김해성 전투는 우국애향의 사명 정신이었다. 430여년의 무관심에 아는 이, 모르는 이 속에 묻혀 왔다. 우리시에 우리 지역민들은 위국헌신과 우국충정, 그와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을 되새기며 그 의미를 찾고 재조명하여 단합하는 마음에 대하여 되새겨 볼 때이다.

6월 1일 김해 송담서원 광장에서는 남명정신문화연구원 김성관 이사장의 주최로 비롯된 소규모 관계자와 진행된 추모제가 있었다. 사충신과 순국의병의 활동이 가치와 위상에 비해 크게 인정받지 못하여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중 <음력 4월21일>을 추모제로 정해 선열의 넋을 기리는 자리였다.

추모제례, 살풀이 지전무, 바라춤 등의 의식행사, 흥덕사 덕일스님의 영반의식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해의 사충신은 송빈, 류식, 김득기, 이대형이다.

송빈은 진영읍 하계리에서 태어났으며 임진왜란 당시 중군도총의 임무를 맡아 남문을 지켰으며 왜군을 죽도까지 추격하는 전공을 올리기도 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왜군들이 물밀듯이 몰려오자 끝까지 저항하다가 성이 와해되자 큰 위에 올라 임금이 계신 한양을 향해 절한 뒤 절명시를 남기고 순절했다.

류식은 대동면 예안리에서 태어나 월당진으로 왜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노비를 데리고 김해 읍성에 들어갔다. 왜적이 성으로 들어오는 호계천 물길을 막아 성안의 사람들이 괴로워하자 객사 앞의 땅을 파서 솟은 우물로 성 안의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했다.

김득기는 지금의 외동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왜적이 쳐들어 오는 것을 보고 김해 읍성으로 들어가 동문 했다. 동문의 수비를 맡고 왜적과 맞서 싸우다 순절했다.

이대형은 삼방동에서 태어났으며, 임진왜란 당시 김해부사 서예원이 김해성으로 들어오라고 청하자 장정 백여 명을 이끌고 성으로 들어가 공진문을 지키며 밤낮으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들 사충신을 기리기 위해 1871년(고종 8) 고종의 명으로 사충단이 건립됐다. 사충단의 원래 위치는 동상동 873번지였으나 1977년 김해시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277-6번지로 이전했다. 1995년 4월 20일 사충신의 제향일을 기해 현재의 동상동 분산 중턱에 송담서원을 준공하고 그 안에 복원했다.
일제 강점기 때 중단되었던 사충단의 제례는 1946년 후손과 지방민이 표충회를 조직하고 매년 음력 4월20일 사충신에 대한 제향을 받들고 있었다.

<제1회 임진왜란 김해성전투 순국 사충신 및 의병 추모제>가 봉행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이 주최한 이번 6월1일(음력4/21)은 우리가 그냥 의식을 진행했다는 겉 보기식이 아니라 각별히 되새겨 볼만한 제례였다.
오늘을 시작으로 영원토록 기려 봉행할 아주 정도 있는 이미 있어 와야 할 추모제례였다. 이날을 경건히 임한 자리에서의 우리의 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 진정한 모습이었다. 추모제례 봉행을 마련하고 자리에 참관한 김해남명전신문화연구원 김성관 이사장의 표정은 흐뭇 그 자체였다.


남명의 경의사상과 실천인문학을 경배하고 이었던 의병 및 사충신이 묻히어져 소원해 지지 않기 위한 정신을 일깨웠다. 그를 기렸다는 점과 나아가 <남명으로 부터 의병 및 사충신까지 추모하는 의식>은 <아우른다는 의지>로 연구원의 이와 같은 대사를 이룬 점은 우리의 참 세상을 여는 가장 올바른 순국선조에 정서를 찾아가는 괄목해 볼 정신 그 자체였다.

김해 산해정 신산재(음력 3/26)와 임진왜란 김해성전투 순국 사충신 및 의병 추모제(음력 4/21)까지를 이어가겠다는 김해남명정신연구원의 이와 같은 결정 실행은 놓쳐서는 안 될 위국헌신 우국충정으로 지켜낸 선조들의 뿌리와 정신을 찾았다는 것이다. 또한 세상이 거듭 빠르게 변화되어 가지만 진정한 정신이라 무엇인가 조상의 얼을 기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찾아보는 의지 있는 날이었다. 잊지 말고 잃지 않아야 할 뿌리에 대한 도를 지켜간다. 평화로이 흐르는 하늘의 묵묵한 구름만큼 실천인문학을 통했다는 실천적 의지가 깃들었다.
이 날 또한 역사적 문화가 있는 날이 되었으며 참 학문의 정신을 행동으로 진행된 뜻 깊고 의로운 정서가 있는 추모제례 의식의 날이었다.
길이 기려 지켜가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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