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은 평생토록 야(野)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학문과 사상이 비록 사회 교화나 민중 교육에까지는 직접 미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의 고통을 마음 아파하는 것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공자가 "새나 짐승과 같이 짝을 지어 살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고 하여, 사회에 대한 우환의식 (憂患意識)과 연대의식을 강렬히 표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비록 재야(在野)의 몸이었으나 일시도 세상을 잊은 적이 없었으며, 또한 정치현실에 대해 준열한 비판과 함께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는 데 아낌이 없었다.
다만 만년에 이르러서는 경세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때를 만나지 못한지라, '학문종자'를 자임하며 교육에 여생을 바치겠노라고 자임하였던 것 같다.
이익이 "근세 유자들 가운데 간혹 퇴계의 평으로 인하여, 남명을 유자류(儒者流)가 아니고 곧 처사 가운데 호협(豪俠)한 기운이 있는 분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가소로울 뿐이다." 라고 일갈(一喝) 한 대목을 주의 깊게 새길 필요가 있다. 남명의 학문과 출처대의에 대해서는 오해나 곡해가 실로 적지 않았다.
퇴계의 비평을 시발로 하여, 이후 남인계 ·서인계 학자들의 거의 공통적인 인식이 되어 왔다. 그러나 남명의 진면목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나중에는 당
파적인 논의와 결부되어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기도 하였다. 개중에는 남명학파를 영원히 회복 불능의 상태로 남겨 두기 위해 악의에 찬 비판을 한 것도
적지 않다.
요컨대, 남명은 계속된 사화(禍)로 인해 풀죽은 사기(上氣)를 진작시켜 선비의 위상을 드높이고, 흐트러진 세상의 도리를 만회하며, 완악하고 몽매하며 나약한 데 빠진 사풍(士風)을 바로잡아 선비의 기개를 한껏 드높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맹자가 이른바 '백이(伯夷) 같은 고결한 사람으로부터 감화를 받으면, 아무리 성질이 완악하고 탐욕스런 사람이라도 청렴해지고, 아무리 나약한 사내라도 뜻을 세우게 된다'고 한 말이 공연한 소리가 아님을 실감하게 한다. 따라서 한국유학사에서 선비정신의 선양과 선비상의 확립에 끼친 남명의 공이야말로 참으로 지대하다고 하겠다.

제5장

남명 사상의 현대적 의미

1. 경의사상이 후세에 끼친 교훈

남명의 경의사상, 특히 의(義) 중심 경의 사상의 효용성은 임진왜란을 통해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미증유의 국난에 처하여 남명 경의 정신의 훈도를 받은 많은 문인들이 도처에서 창의기병(倡義起兵)하여 왜적을 무찌르는 데 앞장섬으로써 국난 타개에 커다란 공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남명 경의 정신의 본령은 단순히 외침을 막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외침을 받지 않는 튼튼한 나라를 만들자는 데 있었다고 본다. 그러자면 평상시에 경각심을 갖고 불의의 횡행을 용납않아야 하며, 사회에 엄정한 기강과 질서를 세워야 하며, 나아가 무비(武備)를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남명은 그의 경의사상을 통하여 당시 여러 가지로 말기적인 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던 조선조 사회에 경종을 크게 울려서 한 번 세상을 크게 바로잡아 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집권층이 이러한 경고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엄청난 불행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남명의 경의 사상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있다면, 그것은 문사와 무사를 겸하는 문무겸비지사(文武兼備之士)라고 하겠다. 남명의 의(義)는 유교적인 문사의 의와 화랑도적인 무사의 의가 결합되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남명 자신이 문무를 겸비한 선비임을 알 수 있다. 남명의 의기(義氣) 역시 유교적인 의기와 화랑도적인 의기가 함께 배양되어 형성된 것이다. 유교적인 의기는 호연지기와 동의어로서 이것은 의를 실천함으로써 그 결과 형성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화랑도적인 의기는 의 실천의 전제조건으로서 무예수련, 특히 검도수련을 통해서 형성된다. 그런데 남명의 의기형성에는 이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작용하였다고 본다. 문사이면서도 누구보다 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남명은 칼로 그의 무의식(武意識)을 표상하였다. 남명은 우리들 후세의 문사들에게 제대로 된 무의식을 갖춘 문무겸비지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야만 문약(文弱)으로 인하여 초래될 수 있는 엄청난 불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참으로 문(文)이 무(武)를 주도하는 사회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남인들이 남명을 경남정신의 표상으로서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남명의 주된 사상과 정신이 옛날 가야문화권의 영향을 받아서 배태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경남인들에게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 경남인들이야말로 어느 지역보다도 가야정신, 즉 남명 정신을 제대로 계승할 수 있는 적자(嫡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남명 정신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여전히 커다란 유용성을 갖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불의와 부정, 도덕적인 타락이 극심한 현대 한국사회를 제대로 정화하기 위해서는 정의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추상같아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양심을 지키는 지기추상(持己秋霜)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는데 있어서 남명의 정신과 사상은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경남지역이 남명정신의 발원지임을 자부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조처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 우선 경남의 지식인들이 이 정신을 현실에서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여 현실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새 천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경남정신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남명의 경의 정신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것이다.

                                                                                                                                                   다음호계속>>>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