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숙)
(이영숙)

 

 

 

 

 

 

 

 

벽에 피가 흐른다

피돌기를 시작한 시멘트는 숨소리를 낸다
빗물이 스며 든 낡은 벽
시간을 채색한 곰팡이의 자생지는
붓길을 따라 숨 고르기를 마치고
바닥을 기었던
민들레 옷으로 갈아 입는다

수직으로 일어선 민들레 속씨
씨앗들 주섬주섬 허공을 붙잡으며
먼 곳으로 날아 간다
갈 곳을 알지 못해도
씨앗을 기다리는 이에게 다가가
착지를 하고 싹을 내린다

씨앗을 쪼아 먹던 새들이 벽에 날아 들어
둥지에 앉아 숨 쉰다
바람을 타고 퍼져나갈 작은 새
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사람의 숨소리를 먹고 자란다

벽에 뿌리를 내린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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