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근(시인. 수필)
이 대근(시인. 수필)

사박사박 걷는 길 가 억새꽃이 바람 따라 순응하고 있다. 마음 한 켠 머문 시간이 왠지 머쓱해지는 날 길 따라 물 따라 빛 따라 나는 해반 천을 걷는다. 그리움이 날 잊지 말기를 바라는 세월에 넌지시 던지는 중얼거림 또한 사색의 한 단면이다. 물 숲에 작은 새 보금자리 지키는 듬직한 살찐 갈대가 근위대처럼 있어, 나는 물길 돌아가듯 돌아 모퉁이 가장자리에 머문 빈 플라스틱 통처럼 둥둥 떠 있다. 빈 가슴으로 와서 외톨이처럼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아래에 머물러 가슴을 연 눈먼 철학으로 고독한 본질을 맛본다. 물처럼 바람처럼 침묵을 깨는 이방인은 부단히 흘러가는 의식을 내버려 둔 채 멀뚱멀뚱한 빈껍데기일 뿐, 보고픔이 날 밀어내지 말기를 메아리 없는 외침이 뚝뚝 떨어지는 붉은 노을빛 안은 해반 천, 나처럼 밤하늘 별을 기다리고 있다.

  그저 내게 있었든 아니 머물렀던 것에 대한 애절함을 애써 털어내는 발버둥일지라도 해반천이 나를 따르고 나도 해반 천을 따르니 한결 가벼운 마음이야 비할 바 없고 저절로 흐르니 저절로 걷는 길에는 무심함에 길든 것뿐, 해 반천 흐르는 물길에 얹혀 길을 걷는다. 어쩌면 비 오는 날 해반 천 길 따라 걷는 사색은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한 번쯤 밀려드는 기억에 벅차 격하게 안아야 할 그리움 따위에 약해진 뒷모습의 쓸쓸함이 돌 때, 그 무거운 여운에 즐거울 때가 있다. 그렇게 사색의 길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몫이어서 더 좋다. 풀숲에 들기도 하고 흐르는 물을 어루만지기나 걷다가 쉬다가 맘껏 즐기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서 더 좋다.

  해반 천은 김해시 삼계동 나밭 고개에서 발원하여 김해 시가지를 좌우로 돌고 화목 동 조만 강에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 약 11.5km 정도 된다. 수년 전만 해도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하천으로 정비사업 등 시민들의 정성에 힘입어 새롭게 태어났다. 물이 살고 생물이 돌아오고 새가 찾아드는 도심의 생명의 하천으로 바뀌고 있다. 해반 천 좌 우 길을 잇는 돌다리가 어우러져 있고, 풀 냄새는 기가 찬다. 일품이다. 평소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것은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 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음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에 안성맞춤인 이유가 있다. 해반 천을 따라 걷다 보면 물오리 떼가 노닐고 있다. 사색의 길은 여기에도 충분하다, 저 멀리 지나는 고속도로의 잔잔한  물 흐름 같은 소리가 들리고 갈대들 바람 소리 가르는 것은 꼭 무언의 손짓인 양 말을 건다. 가시나무 숲길 속에는 운동기구들이 건강을 챙기지만 아무도 없다. 머쓱한 나는 그냥 몸 돌리기에 올라타서 몇 번인가 심심찮게 휘 이 돌아보았더니 이내 친근해진다. 간간이 긴 의자가 휴식을 권한다. 적당한 때쯤에는 나도 별수 없이 의자에 의탁하기는 하나 머릿속에는 빈 것이 없다. 눈과 가슴에 밀려드는 생각들은 부질없는 사색의 찌꺼기들이다. 오만 생각들이 떠나질 않아 그네를 탔다.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온몸에서 피로가 밀려든다.

  해반 천에는 잠시도 그냥 걷게 하진 않는다. 딱 벌어진 김해평야의 뜰이 심심찮게 하기 때문이다. 김해 공항에서의 대형 항공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어딘가를 날아가고 있다. 모두가 한 번쯤은 생각했을 것이다. 여행의 즐거움에 들떠 미소 띠며 비행기에서 김해를 내려다 볼 때의 그 느낌과 해반 천을 따라 걷다 보는 비행기 안에서의 생각을 겹쳐보면 말이다.

  그 옛날 해반 천을 따라 가야국 김 수로 왕의 비 허 왕후인 인도 왕실의 허 황옥 공주가 배를 타고 올라왔다는 설화가 있다. 신세계 백화점, 경전철 역사, 신축된 아파트, 봉황대가 보이고, 계절마다 꽃들이 반기는 현대의 도심과 한적한 김해평야의 논들이 펼쳐진 시골의 모습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해반천은 김해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병풍처럼 둘러싼 신어산과 더불어 크나큰 혜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은 이색적인 가야 뱃길 체험 등 이벤트 행사도 있다. 잘 맞추어 오면 즐길 수 있어 좋을 듯싶다. 마냥 가던 길은 조만강과 합류하는 양지 교에서 유턴하면 출발지로 다시 회귀한다. 해가 장유 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이 질 때면 장관이다. 갈대와 새들과 이모 풀들과 유유히 흐르는 물과 멀리 보이는 신어산과 김해평야의 널은 대지와 함께 한 반나절 사색의 즐거움에 배가 부르다. 일상에서 늘 있었던 것과는 별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오늘은 스스로 쉐프가 되어 저녁 만찬을 차려 즐겼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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