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선비문화를 찾아서

제4장
남명학의 한국유학사적 위치

1, 유학과 성리학, 그리고 전통사상

유학(儒學)이라 할 때 '유(儒)'자는 사람 인(人) 변에 쓸 수(需)자를 써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학문'을 말한다. 또한 사람에게 부드럽게 젖어들어 간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그 범위와 내용이 문학, 사학, 철학, 정치, 경제, 법률, 도덕, 종교, 예의, 음악 등 매우 다양하고 포괄적이다. 그러므로 유학은 인류가 살기 시작한 이래 꾸준히 축적해 온 지혜의 총화로서 인간세상을 살아 가는데 필요한 총체적인 학문이며, 인간사회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준칙들이 담겨있다.
성리학은 성명의리지학(性命義理之學) 혹은 리기심성지학(理氣心性之學)이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와 맹자에 의하여 정리된 원시유학이 보다.
현실적인 인간과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를 담고 있는데 비해, 중국 송(宋)나라 시대에 와서 이전의 불교와 도교의 형이상학적인 것이 새롭게 가미된 학문으로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 등이 이를 형성하고 집대성하였다. 원나라 시대에 국가의 정치철학에 활용되고 우리 나라에는 고려말에 수입되어 조선조에 와서 꽃을 피웠다. 조선조 500여 년간의 성리학은 국가철학과 정치이데올로기로서 왕도정치의 기본이념이자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도덕률로서 조선조 사상사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유학'이라 하면 우리의 전통사상과 문화를 서양과 일본의 영향으로 오늘날까지도 근대 자본주의화(서구화)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서 망국의 한 원인으로 치부할 정도로 매도해 왔다. 그러나 최근 '유교자본주의'나 '유교사회주의'라는 학술용어가 등장하고, 이전과 다르게 재조명되면서 그 문화와 사상적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인류역사에서 18세기 이전까지 많은 분야에서 서양을 앞섰고, 최근 유교문화권 (한자문화권)의 급속한 사회경제적 발전은 유교문화의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최근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단순히 서양화나 미국화가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처럼 우리의 전통사상과 문화를 재조명하는 데서부터올바른 세계화가 가능하다. 이것은 국수주의와는 다르게 우리의 주체적인 화의식이 성립되고 형성되어야 올바른 문화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계문화와 경제발전, 그리고 정치제도도 그 속에 철학사상과 원리원칙이 없고 인간의 기본적 윤리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인간사회에서부터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가 와해되고 말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제반 병리 현상들이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 공직자의 부정부패에서부터 일반 서민과 청소년들의 윤리도덕의 붕괴는 말할 것도 없이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전통문화와 사상을 무시하고 제대로 된 도덕교육을 시키지 않은 데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몰라 춥거나 더운 줄도 모르는 '철부지'에서부터 제대로 된 인간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대부분 지식교육과 외국어 교육을 시키면서 시기를 놓쳐버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그 아이는 제멋대로 자라 부모 말을 따르지 않게 되고 나아가서 경찰에 선생을 고발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법과 제도를 우습게 보고 급기야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그 이떤 세상이 온다 할지라도 사회가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의 모듬살이의 사회라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지켜야 할 본분과 기본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자의 가르침 가운데 인(仁)의 사상으로서, '어질다'라고는 것은 '두 사람(仁=人+人)', 즉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말함이다. '인간(人間)'이란 뜻도 '사람과 사람 사이'로서 그것이 올바른 관계가 아니거나 사람의 노리나 윤리가 없다면 이미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유학은 바로 올바른 인간과 그 인간관계를 가르쳐 주고 있는 훌륭한 학문이다. 그렇다면 지난날 우리 선조들의 대표적 사상이었던 유학을 연구하여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버림으로서 민족사상의 새로운 지표를 정립해 나갈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최근의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비파형 동검과 지석묘의 분포 지역인 중국의 북부 황하 중·하류와 산동반도를 포함하여 만주 동북삼성 지역과 한반도에 분포하여 살았다고 추정한다. 당시 동북아의 주인은 동이(東夷)족으로서 우리의 고조선족이다.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의 유적인 은허에서 한자(漢字의) 시작인 갑골문의 발견이나, 산동반도 근처 무씨사(武氏祠)에서단군신화와 꼭 같은 내용의 비석그림이 발견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은나라가 주나라 무왕에게 멸망당하고 나서 송나라가 되는데, 공자의 조상이 송나라에서 노나라로 망명하였다는 고사를 살펴볼 때 과연 한자와 공자 유학사상의 원류가 중국 것만이 아니라는 연구도 있다.
아무튼 유학은 한문의 전래와 동시에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그 시기는 기자조선 때부터 한(漢)나라에 걸쳐 오랜 기간 서서히 유래되었다. 삼국시대에 민본적 정치사상을 바탕으로 백성을 구휼(救恤)하고 임금 앞에서 충성된 간언을 하는 신하를 뽑아 재상에 임명한다든지, 통일 신라시대 (남북국
시대)에 정전(田)을 지급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다시 말해서 고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도 사회, 정치, 경제, 윤리도덕과 인간의 삶에 유학사상이 뿌리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는 강수, 설총, 최치원 등 훌륭한 유학자- 국 그 밖에 이학를 배출하고 독서삼품과를 통하여 유교경전을 폭넓게 공부하여 정치와 사회제도를 정비하였다. 고려에 들어와 유학을 중심으로 과거제도가 실시되고 해동 공자'라 칭하는 최충(崔沖984-1068)의 유학사상은 이미 성리학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무신정권으로 유학이 피폐되었다가 고려말에 이르러 안향(安:1243-1306)이 원나라로부터 새로운 유학사상인 주자 성리학을 도입
하여 그 제자들에 의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고 성균관에서 성리학에 대한교육이 실시되고, 정치에서도 민본적인 내치(內治)와 의리학의 외교정치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는 본명이 주희(朱熹:1130-1200), 호는 회암(晦庵)이다. 그는 앞 시대인 북송 때 다섯 선생 (주돈이, 장재, 소옹, 정호, 정
이)의 성리학을 집대성하였기 때문에 그의 학문을 주자학'이라고도 일컫는다.
이 학문은 사람의 성품과 우주의 이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성리학(性理學)이라고도 하고, 정자와 주자가 성립시켰으므로 정주학(程朱學)이라고도 하며, 도리를 강조한다고 하여 도학(道學)이라고도 부르며, 그 밖에 이학(理學), 의리학(義理學), 성명학(性命學), 신유학(新儒學)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 성리학의 중심내용은 대개 태극론(太極論), 이기론(理氣論), 심성론(心性論), 성경론(誠敬命)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네 가지에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마음 문제, 즉 마음의 정체와 본질을 파악한 후 그 마음을 어떻게 올고려는 80년 동안 원나라의 지배를 받아온 처지라 자연히 원나라의 과거제 ,험(제과)에 응시케 하였는데 과거시험 때마다 1~2명의 합격자를 내었다고《고려사》는 적고 있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학교제도와 과거제도는 고려의 바르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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