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애 작가

하미애 작가.

 

[ 약력 ]

2010 현대시문학 등단

 

 

팬데믹 상태라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 증으로 세계가 떠들썩한 가운데 제대로 출근을 못 한지가 반년 정도 되었다. 날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감염자와 사망자 수에 뉴스를 접하기조차 두려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하루하루 조바심이 나고,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어 초조하기만 하다. 마음대로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생활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 답답하더라도 외출할 땐 언제나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었고, 손을 조금 더 꼼꼼하게 씻게 되었다. 꾸준히 월 2회씩 문화의 집에서 모여 의견을 나누던 시 동아리는 각자 집에서 시를 쓰고,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 되어버렸다. 편안하고 즐거웠던 나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집에서 소일하며 지내던 중 창고 정리를 하다 먼지가 보얗게 쌓인 분홍 보자기 속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어림잡아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문화의 집 첫 번째 작품발표회 때 냈던 시화 액자였다. 나에게는 첫 번째 작품발표회였다.

1998년 즈음인가.

내외동에 문화의 집이 들어섰다고 했다. 청소년과 노인, 주부 등 계층별 지역 주민들 모두에게 열린 문화 교육과 체험을 위한 공간.

개관 기념으로 다양한 강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2000년 여름 즈음에 ‘시 창작반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만났다.

시 창작반에 등록하고 돌아오던 저녁, 초등학교때부터 꿈꿔왔던 순간이 드디어 나에게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첫 수업을 들으러 갔었던 날. 인원이 5명이 되어야 강좌가 개설되는데, 신청 인원이 두 명 뿐이라 이대로는 시 창작반이 폐강된다고 하였다.

첫날부터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오랜시간 품어온 ‘글을 쓰고 싶다.’라는 나의 마음에 불이 댕겨졌다. 창작반의 존폐를 두고 강사님과 우리는 시 창작반을 위해 책임지고 인원을 채우기로 약속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이 있는지 전화를 돌려보고, 홍보 전단을 만들어 김해 시내에 돌리고 전봇대에 구인광고처럼 붙였다. 진심은 통한다더니 결국 시 창작반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창작반은 동아리가 되어 많은 시우가 머무르기도 하고 떠나가기도 하였다.

나의 젊음과 열정이 묻어있는 ‘샘’ 시 동아리는 자리매김했고 꽤 오랜 시간 문화의 집에서 문우들과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해 가을, 문화의 집에서는 여러 강좌의 작품을 놓고 전시회를 열었다.

처음으로 작품발표회 벽에 걸려있는 나의 액자를 보며 얼마나 뿌듯하던지.

걸음마를 함께하던 시우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등단의 꿈을 이루기도 하고, 생활의 소중함을 지키며 여전히 문화의 집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때는 몰랐었던 나의 일상이 돌이켜보면 얼마나 소중했는지.

하루빨리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고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란다.

마스크 착용도 하지 않고, 활짝 웃으며 시에 대한 열정을 자유롭게 나누던 그 날이 어서 돌아올 수 있기를.

문화는 삶 속에 삶은 문화 속에서처럼. 문화의 집에서 오래오래 시우들과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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