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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비사상과 민본ㆍ외민ㆍ애민정신

1) 출처사상과 벼슬살이 문제

 유학에서 출처사상은 곧 은일사상과 통하며, 공자가 당시 혼란한 세상을 등지고 산림에 숨어사는 사람들을 말한 데서 출발한다. 즉 '고금의 인물을 제대로 논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출처를 본 연후에 그 기림과 비판을 논하여야 한다'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자는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지로운 나라에도 살지 아니하며, 천하세상에 도가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 나타내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출처라는 것은 세상에 나아가 벼슬살이를 하며 경세제민에 참여하는 것과 물러나 재야산림에 머물면서도 정신적 지조를 지키고 후학들을 가르쳐 올바른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유교의 정치사상에서 나온 용어로서 유학사상의 중요한 실천론이다.

 주희 또한 출처에 합당한 인물을 진정한 군자로 보고 있다. 유학은 보다 현실적인 사회 · 정치적 학문사상이기 때문에 간단히 '벼슬하지 않으면 의롭지 못하다'라는 말을 하기 쉬우나,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자신의 '벼슬살이'가 세상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함이 없이 나아가는 것은 큰 잘못이다. 오히려 천하의 선비는 천하의 이익을 위하여 재야에 처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명이 평생 벼슬살이를 마다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유학의 실천론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남명이 단순히 쓸데없는 고집이거나 실제로는 현실정치를 제대로 할 능력도 없으면서 스스로 공자가 말하는 유학의 출처사상에 의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후일 문묘에 종사되어 존경을 받은 회재 이언적이나 퇴계 등의 인물들이 같은 시대에 살면서 벼슬살이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묘사화로 정암 조광조 등 도학정치를 표방한 개혁 세력들이 숙청 당하고 명종년간까지 훈구척신파에게 농락 당하여 민중이 도탄에 빠진 상태였다. 그래서 당시의 벼슬살이는 민중을 위해 도를 실천하는 정치를 시행하기보다는 개인과 가문의 영광과 안락을 위해 벼슬과 재물을 탐하는 형태로 될 것이 뻔했다. 실제로 당시 다른 인물들의 벼슬살이에서 그런 모습들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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