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계속>>>

늘 말하기를  "요사이 초학자들은 고상하고 심원한 학문에 대해서는 말하기 좋아하나 집안 거들 줄을 모르고 인사말 할 줄도 모른다. 먼저 《계몽》 이나 《태극도》 같은 책을 배우기는 하나, 자신의 몸 수양에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하고 결국 빈 이름만 띠게 된다." 라고 하였다. 한 번은 이황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런 폐습을 없애자고 하였다. 또한 언론이 매우 활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잘 계발시켰으므로 듣는 사람들 치고 결심을 다지면서 공부를 철저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듯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영향은 매우 큰 것이었다.
위의 글에는 하학위주의 남명 실천정신에 대하여 간명하게 기록 되어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체득하여 일상생활에 적용이 용이한 공부를 투철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남명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계발시켰으므로 그의 영향 역시 컸다고 하였으니 남명의 영향력 역시 짐작할 수 있겠다. 이같은 계발과 영향이 당시 정치의 비판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실록은 적고 있다. '남명의 기개는 고결해서 속된 풍속에 더럽혀질세라 늘 경계하였지만 현행정사에 대한 근심은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라는 기록과 "매번 나라 정사의 잘못과 백성들의 고통을 들을 때마다 개탄하면서 한숨을 쉬었으며 혹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남명의 실천정신은 하학공부를 통해 현실세계로 열려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2) 실천적 교육자상 확립
남명은 경과 의를 지향하고 실천하는 실천유학의 장을 개척하여 독자적인 교학사상의 체계를 이룩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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