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계속>>>

>남명은 이 상소문에서 첫째, 국정을 수습하는 방도가 구구한 정사나 형벌에 있기보다는 통치자의 올바른 경륜과 판단에서 풀리게 된다고 하여, 학문을 통해 치국의 방도를 밝혀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학문 안에는 왕의 자질을 덕으로 다듬어 줄 수 있는 방도가 있어서 그로 인하여 백성을 교화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둘째, 정사가 한 사람에게 달린 체제에서 인재를 등용하는데 왕이 마음으로써 신심을 보여주어야 한다고도 했다.
남명은 상소문에서 언로의 개방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재야학자로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정치적 경륜을 학문적인 성격으로 풀어 나간 것이다. 이같은 점에서 이 상소문에서는 교육적인 요소 또한 내포되고 있다고 하겠다.
<단성현감 사직소>로 널리 알려진 이 상소문은 조정의 안팎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사관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그 평가를 요약해 보자.
① 조식은 시골에 묻혀 있는 선비로 어진 사람이다. 왜냐하면 벼슬을 가벼이 여기지만 왕과 나라를 근심하는 충성스런 마음을 지니 까닭에 글이 곧고 문제를 바로 지적하였기 때문이다.
② 조식은 자신을 말게 수양하면서 재주를 드러내지 않고 초야에서 살고 있으면서 공명을 얻을 기회가 왔는데도 마다했다. 가난한 살림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지조를 지킨 것이다.
③ 관직을 사양했다고 해서 세상을 등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조정대신보다 더 극렬한 논의로 당시의 정치적 폐단을 지적하였다. 그러니 그 마음이 충직하고 절개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소문이 들어가자 명종은 승정원에 남명의 처사가 못마땅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명종은 남명의 상소문에 대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지적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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