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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퇴게와 남명이 학문적 견해와 개인의 성향에 있어 다소 구별된다는 것을 말하며, 두 분에게 있어 상호 배타적 거리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사정 속에서 남명은 퇴계에게 공허할 수도 있는 성리논쟁보다 현실에 적용이 가능한 실천적 학문을 젊은 제자들에게 권유하도록 요청하였다.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건대, 손으로 뿌리고 비질하는 절차조차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이야기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여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남에게서 상처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칩니다. 아마도 이것은 선생같은 장로께서 꾸짖어 그만두게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은 마음을 보존한 것이 황폐하여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지만, 선생같은 분은 몸소 상등의 경지에 도달하여 우러르는 사람이 참으로 많으니, 십분 억제하고 타이르심이 어떻겠습니까?

퇴계는 기대승과 사단칠정을 매개로 현실에 대응하는 출처의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미 선과 악, 군자와 소인의 분별을 통해 악의 소인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확고한 출처의리를 확립하고 있는 데다 주자 이후 저술이 필요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던 남명에게는 그 같은 철학적 논쟁이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칫 성리학적 출처의리를 왜곡하여 모순된 현실과의 타협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기대승은 논쟁과정에서 참여 속의 개혁을 주장하며 훈척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자신의 처신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남명은 퇴계에게 천리를 논하는 것은 세상을 속이고 명망을 훔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며 그에 앞서 청소하는 방법부터 가르칠 것을 권유했던 것이다. 도덕적 삶에 대한 이론적 검증보다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 편지를 받은 퇴계도 제자들에게 그것을 보여 주며 평생동안 명심할 것을 당부함으로써 그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 일부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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