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미각 / 김민호 외 지음 / 문학동네 / 320p / 2만 원

 

김해에서 유년을 보냈던 필자는 합성초등학교 옆에 있던 중국집에서 처음 짜장면을 먹었다. 그 중국집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안타깝다. 짜장면을 처음 먹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미각의 충격에 휩싸여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릇을 통째로 삼킬 기세로 입 주변에 짜장을 잔뜩 묻히며 먹었던 그때의 짜장면이 내가 만난 최초의 중국음식이었다.

 물론 중국사람들이 보면, 그 짜장면을 중국음식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중화요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 음식문화에 깊이 들어와 있다.

 중화요리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이 책은 짜장면에서 훠궈까지, 역사와 문화로 맛보는 중국 미식 가이드이다. 저자는 김민호 씨 외에 한국중국소설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열아홉 명이다. 한국중국소설학회는 한국과 중국의 소설을 함께 연구하는 두 나라 인문학자들의 모임인데 2019년에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소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르이니 음식문화를 조명해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학회 설립 30주년을 맞이해서 이 책을 펴냈는데, 중국 역사와 문학 속 스무 가지 음식 이야기를 풀어냈다.

 책의 목차를 보면 군침이 돈다. '세상의 모든 향신료와 함께: 오향장육' '위풍당당한 멋과 맛: 북경오리구이' '천재가 만든 돼지고기 요리: 동파육' '온 가족이 한데 모여 빚고 먹는 맛: 만두' '바삭하고 고소한 오랑캐 떡의 여행: 호떡' '금가루를 뿌린 듯 포슬포슬: 양주볶음밥' '경계를 넘고 넘어 탄생한 유혹의 맛: 짜장면' '맛, 소리, 향의 삼중주: 훠궈'. 책 목차를 중화요릿집 차림표로 사용해도 되겠다. 목차를 읽는 기분이 입맛 다시면서 차림표를 살펴보는 것 같다. 책의 구성은 새콤한 전채, 기름진 생선과 고기 요리, 그리고 든든한 식사와 개운한 후식으로 이어진다. 주문을 하듯이 관심 가는 페이지부터 봐도 무방하고, 코스요리를 즐기듯 처음부터 찬찬히 보면 더 재미있다.

 여러 음식 중에서 볶음밥 이야기 한 편 소개한다. 한국인은 밥심이다. 그래서 중화요리를 시킬 때도 밥이 먹고 싶은 사람은 볶음밥을 주문할 때가 있다. 전형적인 중국볶음밥이 달걀로 볶아내는 양주볶음밥이다. 양주볶음밥의 시작은 아득히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대운하가 착공되던 수나라 양제 시절에 시작됐다. 수나라의 양제는 대운하를 뚫어 강남까지 배를 띄운다는 원대한 포부를 실천했다. 양주는 수나라가 건설한 대운하의 시발점인 지역이었고, 고대 중국부터 소금상인들이 판을 치는 물류 중심 도시였다. 대운하를 오가는 사람들은 점심에 먹고 남긴 밥을 따뜻하게 데우려고 거기에 달걀과 다진 파, 갖은 조미료를 넣어 뜨거운 기름으로 볶았다. 남긴 밥을 따뜻하고 맛나게 먹기 위한 뱃사람들의 저녁 한 끼, 삶의 지혜가 응축된 요리가 양주볶음밥이 됐다. 수양제가 이 달걀볶음밥을 특히 좋아했다. 황제가 드시던 음식이라 이름마저도 '황금가루 볶음밥'이란 뜻의 '쇄금반'이라 했다.

  필자는 한국인들이 밥을 좋아해서 한국에 있는 중화요릿집에서 볶음밥을 판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수나라에서 시작됐다니, 정말 놀랐다. 좋아하는 중화요리가 있다면 이 책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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