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식 칠산행정사사무소 대표/시인/ 수필가

이홍식 칠산행정사사무소 대표/시인/ 수필가.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에 닿았다. 덩그러니 한 장 남은 달력을 쳐다보며 무자비했던 말들, 무절제했던 욕심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용서를 구해보지만 꿈같이 바람같이 날려 보낸 세월이 아쉬움과 회한으로 가슴을 저며 온다. 그래도 거친 세월의 궤도를 지칠 만큼 질주했으니 충분하지 아니한가 하며 자위해 보면서 그동안 따뜻한 사랑과 격려로 지내온 기해년 한해에 감사할 따름이다.

 새해가 되면 항상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염원이지만 되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 등으로 잠시도 평온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벽두부터 유치원 개학 진통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사망사고로 전국이 시끄러웠고,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강원도 고성 속초의 대형 산불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올해 7월부터 시작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등 경제보복과 외교적 압력은 온 국민을 공분케 하였고 ‘독립운동은 못 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자발적 국민운동으로 확산하여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조국의 법무부장관임명으로 촉발된 국민여론은 서초동 검찰청사와 광화문 광장에 수많은 국민들로 가득 차게 만들었고 아빠찬스, 엄마찬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국민의 안위를 염려해야 될 국회에선 지금도 여·야 간에 투쟁만 일삼고 있으니 누가 옳고 그름인지 분간도 할 수 없지만,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국회의원들의 작태가 오히려 염려스럽기조차 하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함께 기뻐한 날도 많았다. 순수예술성을 지향하며 프랑스 전통의식이 강하기로 소문난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여 국민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영국 런던에서 15만 관객들의 넋을 잃게 만든 한국의 아이돌그룹 BTS의 활동은 미국 중국 등 전 세계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 무대에서 토트넘의 최고 공격수로 활약하는 손흥민은 지난 8일 열린 ‘번리’와의 EPL 홈경기에서 전반 32분 70여m를 폭풍 질주하며 수비수 6명을 차례로 제친 뒤 골 망을 흔들어 전 세계 축구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류현진은 미국 유명 방송사인 NBC가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성공을 통해 한국계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아시아계에게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아시아계에 대한 미국 내 인식을 바꾸고 있는 사례 중 하나’라고 극찬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며, 정정용 감독이 지휘한 20세 이하(U-20)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은 국제축구연맹(FIFA)주관대회 최초의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안겨 주었으며, 동남아시안 게임에서 베트남축구 역사상 60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의 영광을 안겨 전설이 된 박항서 감독의 활약상도 우리 국민을 매우 기쁘게 하였고, 송가인으로 인한 트로트열풍도 올해 대중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남아있었기에 그래도 보낼만한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해가 또 바뀐다. 원단을 맞고 보면 으레 지난 한 해 동안의 다사다난을 회고하며 저마다 야심 찬 계획과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일년지계를 호기롭게 세우곤 한다.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당장 지척의 시계조차 분간키 힘든 시대 상황의 면전에서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할 따름이다. 2020년 경자년은 힘이 아주 센 흰쥐의 해라고 한다. 풍요와 근면의 상징인 쥐띠해엔 더 이상 나약하고 위축되지 않은 부지런하고 의젓한 부자의 풍모를 한껏 떨치는 호시절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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