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남명학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남명학박사.

 예컨대, 《논어》 헌문편의 ‘경으로써 자신을 수양한다‘에서의 경은 내와 정, 그리고 수기를 위한 실천덕목이라고 한다면,  《논어》 리인편의 ’군자가 천하에 처함에 좇음도 즐겨하지 않음도 없되의 기준에 입각하여 행할 뿐이다‘에서 의는 외와 동, 그리고 치인을 위한 실천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논어》에서는 경과 의를 함께 언급하지 않고 따로이 취급하다가  《주역》문언전에서 비로소 함께 언급하였다.

 그 이후 송대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가 경을 동정과 내외를 일관하는 실천덕목으로 강조하면서 그 의미가 자연히 의에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발흥되기 이전에는 경과 의가 문언전에서 나타나듯이 대등한 개념이었다고 본다. 따라서 위의 “경의가 확립되어야 덕이 외롭지 않다”는 말도 경과 의 둘 중 어느 하나가 결여되면 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로서 이는 의 없는 경과 경 없는 의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완전한 것이 못됨을 암시하는 말이라고 본다.
 
  남명이 그의 패검에 새긴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과감히 결단하는 것은 의다” 라고 하는 것도 앞의 문언전의 말과 비교해 보면 그 뉘앙스야 다르겠지만 유사한 문장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 역시 의가 경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덕목임을 의미하지만, 이 둘이 주부관계로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내명만 있고 외단이 없거나, 내명이 없이 외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진정한 외단은 내명을 바탕으로 하여야 하며, 진정한 내명은 외단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로서 경을 의식의 각성상태로 보고 의를 정신집중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측면에서 문언전의 말과 상통한다고 하겠다.
 
 남명이 경과 의를 각각 해와 달에 비유한 것도 경과 의는 기능이 다르면서도 어느 것 하나 없어서는 안되는 덕목으로서 대등한 위치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해가 낮을 밝히는 존재로서 양으로 파악된다면, 달은 밤을 밝히는 존재로서 음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남명이 이처럼 경과 의를 대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경’의 연장선상에서 의를 보고자 하는 성리학적인 경의관념과는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경가 의를 대등하게 보는 관점에서는 무엇보다도 궁리의 요소가 배재되거나 경시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주지주의적인 색채가 약화되면서 실천적인 색채가 강화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경의관념은 실천을 매우 중시하는 선진유가적인 학풍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남명의 의 위주의 경의관념
 
 남명이 그의 사상적 핵심인 경의를 사징하는 것으로서 평소 소중히 간직하였던 두 가지 물건이 있다. 하나는 그 이름을 성성자라고 하는 경을 상징하는 방울이고, 다른 하나는 의를 상징하는 패검이다. 그리고 그는 이 검에다가 검명을 새겼다. 그런데 이 검명에서는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의 뿐 아니라 경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의의 상징인 검에 경을 언급하는 명문을 새겼다는 것은 결국, 암명의 경이 의로서 집약되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경보다 도리어 의를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에 비중을 두고 경을 보는 것을 ‘주경과의’라고 하는데, 이는 ‘경을 주로하되 그것이 결과적으로 의의 실천으로 귀결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국, 경을 제대로 행의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 위주의 경의관념이야 말로 남명의 독창적인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측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남명이 경을 강조하였다는 것은 이 당시의 다른 성리학자들과 비교하여 별로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일반 성리학자들과 달리 경과 의를 동시에 강조하였다는 것 역시 의가 경에 종속되지 않고 대등한 비중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이것을 남명만의 특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남명사상의 가장 남명다운 점은 경의 가운데서도 의를 강조한데서 찾아져야 하리라고 본다.
 이제 남명이 특별히 강조한 의라는 덕목의 성격과 그 연원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