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가락국 시조릉

김종간 향토사학자.

납릉-노우수

누관숙조불견인

일춘제조몽전진

낙일서성방초로

주성시태독상신

 

다락집 쓸쓸히 사람 보이지 않고

이 봄을 울어대는 저 새는 전 왕조를 생각하는가.

해 지는 성의 서쪽 꽃다운 풀밭,

술 개면 시흥이 끝나니 홀로 마음만 아프다.

 

작가 노우수는 1778~1848의 인물로 김해 출신이다. 호는 묵와이며 일찍이 유심춘에게서 중용과 대학을 힘써 배웠다. “천진하였으며 학문이 깊고 의젓하였다.”고 『읍지』학행조에 적고 있다.

 

왕릉-김현로

활해무원겁후진

단청주각병연신

삼한지입라왕국

천재시봉임자춘

조육천장시보경

기다오소부지인

 

넓은 바다 무성한 언덕은 병겁으로 티끌이 되고

단청 누각은 새로이 빛나

삼한 땅 신라왕국으로 들어가고

천년의 세월에 만난 임자년 봄이여.

천장 길러 베푼 것은

보은의 경사로다.

내 깊이 느낀 바를 남들은 알지 못하리라.

 

작가 김현로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인물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능감으로 적고있고 능묘 보수시 조정에서 파견된 감독관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단청보수 후에 지은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왕릉-허 형

천년가락국

양위납릉존

황제교산장

창오상수원

 

신령여작일

처창배유손

왕제비사례

인정미감론

 

천년 지난 가락국에

양위의 납릉이 높고 귀하다.

황제는 고산에 장사지냈고

순은 창오산 상수의 언덕에 묻었다.

 

신령함이 어제와 같아

슬픔으로 후손들은 참배를 한다.

왕의 제사는 사사로운 예의가 아니라서

인정으로 감히 논할 수 없구나.

 

작가 허 형은 1712~1792년의 인물로 김해 출신이다.
학문과 바른 행실로 사회가 높이 받들었으며 81세까지 장수하였다. 자인현감으로 나갔을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자인은 경북 경산이다.

 

납릉-조석환

양류서릉일낙시

행인주마창주지

정배욕문전조사

조쇄공림월만지

 

수양버들 우거진 왕릉에 해가 질 때

길가던 사람 말을 멈추고 슬픔으로 머뭇거린다.

잔을 놓고 전조의 일을 물어 보는데

새는 잠자러 빈숲으로 들어가고 연못에는 달이 가득하다.

 

작가의 호는 야수로, 1805~1877년의 인물. 창녕이 본관이다. 성품이 신독하고 고서에 박학하였다. 늙어서까지 책을 놓지 않았으며 후진양성에 힘썼는데, 작품에서는 가야왕조에 대한 애잔한 시심이 느껴진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