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고

일본산고 /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8p / 1만 2천 원

 

 한일관계에 대한 기사, 일본제품 불매 운동에 대한 기사가 넘쳐난다. 아무 일이 없이 지내는 중에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면 만사 제쳐놓는 판인데, 요즘 일본의 행태를 보면 그야말로 분기탱천할 지경이다. 분한 걸로 치자면 온 마음을 다해도 끝이 없고, 되갚아주자고 치면 온 몸을 다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지난 역사의 잘못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은 채 억지를 부리는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 같은 사피엔스 종의 인간으로서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고 치밀하게 일본을 대해야 한다. 그런 여론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한 책이 화제가 됐다. 고 박경리 선생의 책 <일본산고(日本散考)>이다.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는 부제가 책표지에 선명하다. 작금의 현실에서 한번 다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되어 소개한다.

 이 책은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일본에 관해서 썼던 글을 모은 것이다. 책에서 펼쳐지는 박경리 발언은 단순히 한일 두 나라의 이해와 갈등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생명에 대한 존중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닿아 있는 내용들이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에 태어났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일제 강점기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일본이 식민지조선에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백성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모두 보았을 것이다. 선생의 체험은 아픈 기억이자 굴레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분석과 극복의 대상이기도 했다. 선생이 남긴 대하소설 <토지>는 소설로 쓴 일본론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토지>는 구한말에서 1945년 해방까지의 시공간 배경으로 한다. <토지>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의 부침과 민족 담론의 양상, 일본의 식민 지배 전략과 한일 문화 비교론, 지식인들의 숱한 논쟁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선생은 <토지> 외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강연과 여러 지면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 '일본 문화'에 대한 생각을 펼쳐 보였다. 선생에게 <일본산고> 집필은 사명이며,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이었다.

 책 속의 한 대목은 이렇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 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잘 차린 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상차림에서 저울질 한다." 인터넷에서 어떤 이들은 이 대목에서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라고들 말한다.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일 문장이 아니다. 일본을 잘 알지 못하면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없다. 얼마나 아픈 문장인지 느껴야하고, 일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원로 작가 한 분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일년 내내 추수할 때만 기다리면서 온 집안 사람들이, 온 마을 사람들이 뼈빠지게 일했지요. 그래서 왜놈 순사들이 총칼 앞세우고 와서 쌀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뺏아갈 때 치가 떨렸습니다. 절대로 잊히지 않는 기억입니다." 수 십 년이 지났는데도 원로 작가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필자도 분해서 눈물이 났다. 분하지만, 감정만 가지고 대할 수는 없다. 일본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