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인간

회색 인간/ 김동식 지음 / 요다 / 356p / 1만 3천 원
서경훤 화정글샘도서관 사서

△사서의 추천이유
 
 『회색인간』은 김동식 작가의 아주 짧은 글들을 모은 소설집 시리즈 중 한 권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주물공장에서 10년을 일했다. 매일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그 내용을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올렸고, 300편이 넘는 짧은 소설들이 쌓였다. 그 중 수십 편을 추려 소설집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단 한 번도 글쓰기를 배운 적 없는 김동식 작가의 글은 신선하고 통쾌하며 여운이 남는다. 마지막에 수록 된 ‘피노키오의 꿈’도 그렇다. 어느 날, 말하는 목각 인형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피노키오라 부르며 신이 노인을 위해 목각인형에게 생명을 주었다고 믿는다. 다시 나타난 신이 이번에는 피노키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하자 사람들은 환호한다. 피노키오의 꿈이 무엇인지는 뻔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피노키오는 신에게 빌었다. “저는, 건강한 소나무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건강한 소나무가 되고 싶은 것은 피노키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린 모든 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오만이자 착각일지도 모른다.
 
 김동식 작가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작품 속에서도 다양한 극한 상황을 통해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 짧은 글이지만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해, 노동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박현주 북 칼럼니스트의 보태기

 “독자들이 돈을 내고 내 소설을 보는 것이 뿌듯하다”면서도 “(부족한 글로) 돈을 받아도 되나 하는 죄송한 마음도 든다”고 고백한 바 있는 김동식 작가. 그가 했던 이 말만으로도 호감이 생긴다. 독자 바로 옆에 앉아있는 작가를 보는 기분이 든다. 성큼 다가가 손을 내밀어 악수라도 하고 싶다.
 
 김동식 작가가 등장했을 때 세상은 ‘지금까지 없었던 작가이며 작품’이라고 환호했다.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에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던 김동식의 소설들은 책으로 다시 독자를 만났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시리즈다. 갑자기 펼쳐지는 기묘한 상황, 그에 대응하는 인간들의 행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사실 그렇다. 살다보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고, 그 상황은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이라며 놀랄만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기이한 유머로 가득한 김동식의 소설은 농담처럼 가볍게 읽히지만, 한참을 곱씹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피노키오의 소원이 건강한 소나무라는 이야기처럼, 작품을 통해 작가가 던지는 질문들은 자꾸만 생각난다. 짧은 작품들이 어떻게 이렇게 큰 철학적 의문을 제기하는지 깜짝 놀라기도 한다.
 
 김동식 작가는 소설이 무엇인가, 한국 소설문단의 흐름은 어떻게 흘러왔나, 작가들을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가 등의 기존 시각을 넘어서게 한다. 10년 넘게 공장의 뜨거운 아연 앞에서 노동했던 작가의 경험은 노동, 인간, 현재에 대한 성찰을 녹여냈다. 그 속에는 우리가 한번쯤 상상해보았던 진짜 이야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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