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가야칼럼
세계 젊은이들의 아이콘 체 게바라하성자 시의원

 

하성자 시의원

 아르헨티나의 의학도였던 체 게바라는 남미여행을 통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이 세계의 모순을 먼저 치료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 판단하고, 쿠바, 아프리카의 콩고, 남미의 볼리비아 등의 혁명에 투신했다.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는, 기층민중을 헐벗게 만드는 자본주의와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지 몰라도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제물로 삼는다. 한편 공산국가는 자유에 관한 한 전체적인 개념 때문에 인간의 권리를 희생시킨다. 우리가 그 어느 것도 일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체 게바라의 일기 중에서 출처 : 체 게바라 평전 - 장 코르미에 저)

 공산주의 노선도 자본주의 노선도 아닌 사람 중심의 이상 실현, 그의 사상과 행동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뜨거운 신화로 다시 살아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시대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휴머니스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는 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 차코의 작은 시골 마을, 라이게라(La Higuera)의 조그만 학교에서 서른아홉 나이에 사살되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버쩍 마른 체(Che)의 모습은 그 옛날 십자가에서 생을 마감한 또 다른 'Ch' 즉 그리스도(Christ)와 끔찍하리만치 닮은 모습이었다. 둘 다 평등을 위해 투쟁한 박애주의자들이었지만, 체 게바라가 선택했던 길을 팔레스티나의 유태인 예수가 걸었던 평화로운 노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을 믿지 않았던 그는 오직 인간만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그것이 비록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를 좇는 것이라 해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노력하는 강인한 정신과 용기를 갖고 있었다." (p35~36, 저자 장 코르미에의 서문 중에서 축약)

 체는 평생 천식을 달고 다녔다. 평범한 의학도였던 10대의 체가 오토바이를 타고 중남미 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인생은 혁명이란 매우 특별한 길로 급선회하게 된다. 카스트로 형제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면서 많은 전투를 했고 결국 쿠데타를 승리로 이끌어 쿠바의 카스트로 공산정권 수립의 일등공신이 된다. 카스트로가 주는 직책과 혜택을 내려놓은 체는 볼리비아로 가서 게릴라전에 돌입한다. 끝없는 투쟁, 평화로운 곳보다 투쟁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던진 체, 그는 그렇게 서른아홉의 생을 끌어당기다시피 볼리비아에서 마감했다.
 
 우리는 왜 체에게 주목하는가?

 조직을 위해 조직을 배신한 자나 어떤 상대를 향해 총살형을 과감히 선택하기도 했던 체 게바라, 그런 체는 영락없는 게릴라군의 잔혹한 리더이다. 그런데 그는 인도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로서 양민을 보호했고 적이든 아군이든 의사로서 치료해주었다. 그는 끊임없이 천식의 고통을 겪었으며 긴박한 전투상황에서 낭만적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했고 음악을 사랑했으며 생의 마지막까지 비망록을 썼다. 최악의 상황에서 일기를 썼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의 성찰을 위해 얼마나 최선의 노력을 다한 현실주의자였던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가 쓴 일기와 편지 덕분으로 오늘 날 체 아이콘이 탄생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의 모습에서 혁명가보다 인간적인, 더구나 그의 마지막 숨진 사진을 보면 순수한 미소가 이 세상을 티 없이 살다간 어린 천사의 얼굴 같다는 신비로움을 받게 된다.

 누구나 세상에 한 번 태어나 일생이란 세상 한 줄을 긋는다. 체가 아니더라도 나름의 리얼리즘을 간직하고 꿈을 향해서 진실로 한 번 걸어보면 좋겠다. 따가운 태양 끝과 시원한 바람이 닿아 꿈을 향하는 이의 볼에는 보이지 않는 자국이 선명히 찍힐 것 같다. 이 여름 햇살을 뚫고 사람을 꿈꾸며 걸어보리라.

김해일보  gimhae114@naver.com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해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