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 정준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360p / 1만 6천 원

 6·25전쟁은 한국 현대사에 큰 상처를 남겼고,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치도 모르고 이데올로기도 모르는 사람들이 전쟁의 피해를 입었다. 광복의 기쁨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던 이 땅의 백성들은 전쟁기간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이 책은 전쟁 중에 우리나라 화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또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소개한 책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세상살이에 더 서툴렀던 예술가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 6·25전쟁 당시 우리 화가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그리고 화가들이 기록한 6·25전쟁 당시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정준모 씨는 한국근현대미술에 대한 책을 많이 쓴 것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미술계에서는 '걸어 다니는 아카이브'로 통할 정도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묻혀 버린 작품들을 찾아낸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엄혹한 시절, 화가들은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를 담은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었다.

 저자는 6·25전쟁이라는 이 나라의 비극을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라고 말한다. 전쟁 중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박수근 화백이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살았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소설 <나목>에서도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현대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같은 화가들은 미군부대 앞에서 미군들의 초상을 그려주거나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다. 대한경질도기주식회사에 취직해 장식접시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부산의 광복동 찻집 거리에서는 크고 작은 전시회가 끊이지 않았다. 부산으로 피란을 왔던 많은 화가들이 허드렛일을 찾아 하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광복동에서 그림전시회를 열었던 것이다. 화가들의 끈질긴 생의 의지와 예술에 대한 저력을 목격할 수 있는 사례이다. 

 총탄이 누비는 전쟁터에서 종군화가로 활약했던 화가도 있었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정훈국 산하에 종군화가단을 두었다. 다른 부대에서도 종군화가단이 조직됐다. 종군화가단에서 활동한 화가들은 전투현장의 참혹한 현실을 경험하고, 그 생생한 아픔을 그림으로 남겼다. 우신출과 이준, 오영수 같은 화백들은 진격하는 국군과 함께 원산까지 갔다. 그 과정에서 동료 화가를 잃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그런 아픔 속에서도 종군화가단에서 활동한 화가들은 그림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다.

 6·25전쟁은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물적 손실을 일으킨, 아물지 않은 우리의 역사이다. 그 역사 안에서 화가들은 전쟁이라는 참혹한 순간과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켜 끊임없이 작품을 제작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려야 했던 선전화와 김일성 초상화도 있었다. 전쟁과 정치적인 명분에 따라 가열되는 좌우 대립, 그로 인해 희생되는 화가들의 모습은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한다. 6·25전쟁, 그 파괴된 역사의 현장 속에서도 화가들의 예리한 감수성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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