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 옥천봉은사 주지/ 사)정신건강교육개발원 이사장

현진 옥천봉은사 주지
사)정신건강교육개발원 이사장

 태어나서 지금까지 앞으로도 늘 함께하고 어쩌면 죽어서도 같이 가는 것이 유일하게 있다면 그 것은 마음일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삶 전반에 작용하고 있는 마음이 이거다 라고 확정 지울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것이 눈에 보인다면 어쩌면 삶에 괴로움에서 좀 더 쉽게 벗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교육기관은 많다. 유치원, 고등학교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육 기관이 있다. 인생이라는 삶의 여정에서 괴롭고 슬프고 기쁘기도 하며 일분일초도 잠 잘때도 같이 하고 있는데 그 마음에 대해서는 정작 우리는 마음을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

 신형 휴대폰이나 전자 제품을 사면 사용설명서가 있다. 사용설명서 대로 하면 그 제품을 최상의 기능대로 사용하여 만족감을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늘 평생 같이해야 할 마음에 대해선 사용 설명서가 없다. 또한  가르쳐 주는 곳도 없는것이 현실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바람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은 보이지않고 형체는 없지만 작용은 분명히 하고 있다. 마음은 희노애락에 오욕이라는 감정에 따라 웃고 괴로워하고 있다.

 마음! 과연 무엇일까 ? 마음 사용설명서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자.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 질까 궁금하고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마음이 생겨 났으니까 우리는 마음을 쓰고 있다. 그러나 마음의 생성원리와 작용원리를 모른다. 이것의 생성원리와 작용을 안다면 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타인과의 소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을 잘 설명되어 진 것이 반야 심경에 나와 있다. 첫구절에 관자재보살이 수행중에 오온(五蘊) 모두 공하다는 것을 알고 일체의 액난으로 부터 벗어났다는 것이 나온다. 이 한구절에서 일체의 괴로움,액난 공포,등을 벗어나 무애 자재한 자유를 얻는 묘한 도리가 씌여져 있다. 마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오온(五蘊(色, 受,想,行,識)) 으로 표현 하였다. 이것을 풀어서 설명하여 보겠다. 신체에는 외부의 정보를 받아드리는 기관이 있다. 눈은 사물의 형체를 알아보고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맞고, 입은 맛을 알고,피부는 느낌을 느끼고, 이것을 우리는 외부정보를 받아드리는 감수기관이라하고 또한 오감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받아드려진 정보는 뇌에서 상이 생긴다. 그러면 개체성의 본능에 의해서 생존에 이롭다,이롭지 않다로 구분지어진다. 쉽게 말해 기분이 좋다 나쁘다로 귀결되며 그 정보에 이미지가 붙는다. 비로서 정보와 감성이 생성되는것이다.

 마음은 사실 복잡하지 않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의 기분의 연속일 뿐이다. 그리고 각 뇌와 몸의 세포속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각 뇌와 세포로 이동된 정보와 이미지는 그곳에서 자라를 잡게 되는 것이다. 바로 집을 짓는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식(識)이라 한다.

 대상과 오감과 이미지가 더해져서 한생각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비로서 마음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것은 자기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만큼 보고, 듣고, 맛보고, 경험하고, 학습하여 첩첩히 쌓여있다. 이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되고 삶의 가치관이 되기도 한다.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관점)에 색이 들어간 것이다. 파란색 안경과 검은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같은 것을 서로 다른 칼라로 보기때문에 본연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왜곡해서 보면서 살 것이다. 그것이 괴로움의 시작인것을 모르고 서로 자기가 본 세상이 맞다라고 다투는 우를 범하고 있다.

 또한 마음은 신체의 각 세포에 신경전달 물질로 전해져 기억되어지며 또한 군락을 지어 존재하게 된다. 이를테면 간, 담에는 분노, 화 등 폐, 대장에는 슬픔, 연민 등 신, 방광에는 두려움, 공포 등 심장에는 사랑이.......

 이렇게 마음이 몸에 자리를 잡으면 그 때부터는 나의 뜻대로 잘 따라주지 않는다. 공황장애나 트라우마 우울증,스트레스등은 내가 안그래야지 하여도 몸에서 반응을 하기 때문에 쉽게 콘트롤 되지 않는다.

 다들 경험을 통해서 알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공황장애는 불시에 아무런 조건 없이도 몸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같고 아무리 정신으로 컨트롤 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도 마찬가지이다.

 뇌는 이러한 몸의 증상과 요구들을 취합해서 어떻게 할것인가 라고 하는 것을 대처를 하는 총 사령탑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마음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서두에서 말했듯이 관자재 보살이 오온이 모두 공한것을 알고 모든 괴로움과 액난, 공포에서 벗어 났다고 하였다. 그럼 어떻게 정보, 오감, 이미지가 한꾸러미(五蘊)가 되어야 비로서 한마음이 생겨난것이 실체가 없는 공함을 알수가 있을까? 각자 하나씩 있을적에는 의미가 없다.

 이렇게 한꾸러미가 만들어지는 시절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시절 인연이 가합되어져서 생성된 것은 시절 인연이 끝나면 사라져야 되는데 그것이 우리의 의식속에서 집을 짓고 우리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착각에서 괴로움이 시작된 것이다.

 부처님 수행당시 마라(마귀)들이 부처님을 꾀어내어 더 이상 수행을 하지 못하게 할때 부처님께서는 마라들에게  "집짓는 자들이여!! 나는 너의 정체를 알고 있다." 라고 말씀하신 부분이있다. 마라들은 결국 나의 가합된 현상과 내면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 한것 즉 실체가 없는것들이기에 거기에 끌려다닐 아무런 이유가 없고 그들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는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자. 처음에 마음이 만들어지는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보가 이미지가 덧 입혀지기 전 상태로  돌아 가야 한다. 이미  집을 짓고 있는 마음이 가합되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한다.

 작은 자각(自覺)으로 시작하여 후에 그러한 전도된 착각에서 내가 지어놓은 생각놀음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통렬히 자각하게 된다면 이미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나의 뇌속에 생각의 괘적이 남으면 안된다. 정보와 이미지가 박리가 되고 생각이 마음에 머물지 않게 되면 더 이상 괴로움은 없어 질 것이다. 생각은 연장통속에 연장(도구)이 되어야 한다. 망치로 못을 박고 계속 망치를 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 회사나 친구들과 다툰 것을 집까지 싸들고 와서 분노하고 후회하고 미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일이 있었구나!!! 기억은 하되 마음이 동요 되어서는 안된다.

 삶의동력이 타인이 아니고 외부환경(돈,명예등)이 아니고 스스로가 주체적인 삶의 동력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 하므로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참 주인이 될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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