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기묘년 9월 초이틀
-합환례를 올리다

 드디어 오늘은 합환례의 날이다. 들에는 국화가 만발하여 국향이 은은하다. 하늘에는 청둥오리 떼가 북녘에서 돌아와 끼륵끼륵하며 떼지어 나온다. 우리의 합환례를 축하나는 것 같기도 하고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구슬 시녀는 녹두물에 나의 머리를 씻기고 동백자유를 바른다. 옆구리에다 사향 주머니를 매달아 준다.

 신향이 온몸에 배이는 것 같다. 얼굴 화장에 각별한 신경을 써준다. 궁정에는 잡리를 입은 대소 신료들과 궁녀들이 모두 나와 정중한 축하를 해주었다. 금관옥적과 가야금 소리가 장중하게 울려퍼지고 천지신명께 축복을 염원하여 의식을 올린다. 모두는 즐겁게 담소하며 잔치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우리 가야 음식은 주로 다밧고기나 청둥오리가 특미로 사랑받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야 국민들은 모두 청둥오리 고기를 좋아하므로 요리법이 발달되었다. 오늘은 쟁반 위에 감잎을 깔고 그것을 흩어 놓아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오늘의 요리는 단연 청둥오리 요리가 가장 인기 있는 것 같다.
 
 모두 즐거운 얼굴이었고 그중에서 부마의 양부모님은 너무나 흡족한 얼굴로 시종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부마 황세장군의 얼굴은 그러지 못하고 수심의 그림자 같은 게 어려 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불길한 예감 같은 게 떨쳐지지 않는다. 일국의 공주 그것도 표현하기는 거북하지만 다들 천하의 지수라 불리워지는 내가 아닌가. 다만 나의 외양을 가꾸는 데는 다른 아녀자들에 비해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지만……나 같은 여인을 호구로 맞이하는 남정네가 무슨 불만이나 고민이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언제나 그렇듯 나의 시녀이며 벗이기도 한 구슬 시녀에게 의논하는 것이 상책이라 여긴다. 구슬은 나의 얘기를 듣고 자기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하며 소상히 알아보겠다며 너무 걱정 하지말라고 위로하였다.

 나는 청옥과 자수정 목걸이와 황금 팔찌를 구슬에게 선물했다.
이것은 꼭 이번 일에 연유해서만은 아니다. 가난한 그의 부모님을 봉양하는 구슬에게 그전부터 도움이 되어 주고 싶어 벼렀던 것이다.

 한사코 사양하는 구슬에게 나의 장신구를 주고 나니 내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그 정도면 그의 부모님 여생의 식생활에 큰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의 절도 있고 품위 있는 언행은 시녀를 넘어 나의 스승 역할도 해주고 있다.

기묘년 9월 열엿새
-눈물 젖은 원앙침

 합환례를 올린 지 보름이 지났으나 부마는 신방에서조차 말이 없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도 함께하며 이번 합환을 기대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이런 나의 충정과 아바마마의 간절한 사직수호의 염원을 부마는 왜 모르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심결이 지나서야 잠이 들었지만 꿈속에서 예전의 그 독룡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힘을 얻기 위해 청옥을 나의 가슴에 얹고 잠을 다시 청하였다.

임은 곁에 있지만은 마음은 알 수 없네
마음을 모르오니 마음 둘 데 없어
지척이 천리란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가

구슬은 자기 부모님의 도움으로 황세 장군의 그간 사정을 소상히 알아서 나에게 보고해 왔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북대사동에 사는 황 정승과 남대사동 사는 출 정승은 아주 친한 사이였다. 서로는 앞으로 자식을 낳으면 합환시켜 사돈이 되기로 약속했다. 황 정승은 아들 세를 낳고 출 정승은 여식 여의를 낳았다. 그런데 황 정승의 집안은 차츰 가난하여 어렵게 되고 출 정승은 제철업에 손대어 더 부유하게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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