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 남명학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 남명학박사

 남명 정신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자료는 문집에 산재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명종 10년(1555)에 임금에게 올린 〈乙卯辭職疏〉에 구체적으로 나온다.

 "丹城縣監에 새로 제수 된 曺植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면서 주상전하께 글을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하옵는데 선왕(중종)께서는 제가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시고 처음에 참봉에 제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왕위를 이으신 뒤에, 주부로 제수하신 것이 두 번 이었는데 지금 또 제수하여 현감으로 삼으시니 떨리고 두렵기가 언덕과 산을 짊어진 것 같습니다. 제가 벼슬에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저의 나이는 예순에 가깝지만 학문은 성글고 어두우며, 문장은 과거시험에 겨우 뽑히기에도 부족하고, 행실은 물뿌리고 비질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에도 모자랍니다. 과거시험을 보기 십여 년 동안에, 세 번이나 떨어진 뒤 물러났으니, 애초부터 과거공부를 일삼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과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그는 성질 급하고 마음 좁은 평범한 백성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큰 일을 할 만한 완전한 재주꾼은 아닙니다. 하물며 그 사람 됨됨이가 선한가 선하지 않은가는, 과거를 보려고 하는가 보려고 하지 않느냐 하는 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잘 것 없는 제가 이름을 도둑질하여 집사(추천한 관원)에게 제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잘못 판단하게 했고, 집사는 이름만 듣고서  전하에게 제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잘못 판단하시도록 한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과연 저를 어떠한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道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하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도를 지닌 사람이은 아니며, 도를 지닌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저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다만 전하께서 아시지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재상도 또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을 알지 못하면서 등용하여 다른 날 국가에 수치가 된다면, 어찌 죄가 보잘 것 없는 저에게만 있겠습니까? 헛된 이름을 바쳐 몸을 파느니, 알찬 곡식을 바쳐 벼슬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제가 차라리 제 한몸을 저버릴지언정 차마 전하는 버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운 첫 번째 까닭입니다. (중략)

 더구나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고 사람을 쓰는 것은 몸으로써 하고 몸을 수양하는 것은 도로써 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을 눈으로만 뽑으신다면 잠 잘 때 이외에는 모두 속이고 저버리는 무리일 것이니"

 남명은 〈을묘사직소〉에서 인재 선발이 나라 일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한다는 취지에서 당시의 정치 형태에 대하여 正論을 펼친 것이다.  실록에 따르면 남명은 명종 7년 7월에 성수침, 조욱, 성제원, 이희안 등과 더불어 注簿에 임명 된 바 있고 명종 8년에도 예빈시 주부를 제수 받았으나 모두 不就하였다. 주부 벼슬은  관아에 딸린 종 6품의 말단직이다.

 여기서 남명이 벼슬을 거절 한 이유를 몇 가지로 추론 할 수 있다. 첫째 늦은 나이에 출사한들 더욱이 낮은 하급 관리에 임명되어 나아가기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격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명종 연간 조정 권신(특히 외척)들에 의해 나라가 어렵고 어지럽고 민심이 추락한 때 자신이 나아가서 道를 펼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슬을 하려는 소인배들의 虛名에 질려버린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허명에 현혹되어 인재를 몰라본다면 나라 발전 독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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