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논설위원

한상규 논설위원

 근심과 설움이 없는 세상살이 그건 지상낙원이다. 문 밖에 나서면 뭇군상들의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내가 사는 집에서 도시철도로 가는 길모퉁이 전봇대 밑에는 수년 째 노인이 쪼그리고 앉아 우산을 손질하거나 그 일이 없으면 폰을 검색하며 하루 종일을 보낸다. 요즘 같이 풍요로운 세상에 우산을 쓰다가 고장 나면 버리지 고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버리고 간 우산을 주워서 열심히 손질하고 있으면서 지나가는 행인을 쳐다 보지도 않고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 오후가 되면 늦은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낙천적인 모습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노인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하여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있는 생활태도에 대하여 '道'가 따로 없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철도를 타고 보면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폰을 검색하거나 눈을 감고 상념에 젖은 모습들이 전부다. 이런 모습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가. 폰을 만지는 사람들은 습관성 불안증을 감추려는 것이 아닌가. 폰을 잠시라도 보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뭔가 부족 한 듯한
생각이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눈을 감은 사람들은 피곤한 생활에서 고달픔이 보인다. 
 
 이런 군상에서 여윈 사람도 있고 살찐 사람도 있다. 여윈 사람은 근심이 있고 살찐 사람은 설움이 있는 사람이 아닐가. 근심 걱정이 많으니까 마음이 편치 않아서 생활이 고달퍼서 여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차만 타만 긴장이 풀어져서 잠을 자게 된다. 설움이 있는 사람은 알려고하고 하고저 하는 마음을 채울 수 없어서 그나마 폰을 검색해야 위안을 받게 된다. 세상사는 마음 한번 먹기에 달렸다. 조선시대 기묘사화때 낙향한 34살의 선비 김정국(1485~1541)은 동부승지의 자리서 쫒겨나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하며 현실에 만족하며 살았다. (綠俸)도 끊긴 그가 '팔여(八餘)'라고 한 뜻을 몰라 친한 친구(親舊)가 그 연유를 묻자 웃으며 말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듯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書家)에 가득한 책(冊)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感想)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梅花)와 서리 맞은 국화(菊花)향기(香氣)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라 했네.”김정국(金正國)의 말을 듣고 친구(親舊)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和答)했다.

 "세상(世上)에는 자네와 반대(反對)로 사는 사람도 있더군.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不足)하고, 휘황(輝煌)한 난간(欄干)에 비단(緋緞) 병풍(屛風)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不足)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不足)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不足)하고, 아리따운 기생(妓生)과 실컷 놀고도 부족(不足)하고, 희귀(稀貴)한 향(香)을 맡고도 부족(不足)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不足)한 게 있다고 부족(不足)함을 걱정하더군."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에서의 자극이라기 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받아 들이다가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되어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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