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나는 16세가야 소녀 송현이, 순장녀였기에 슬픈 주인공이라 하겠지요. 삶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왕이 죽어서도 자신에게 봉사할 사람들과 도구들을 갖고 가려는 데서 나를 포함해서 네 사람이 순장되었답니다. 연로하신 임금님은 나를 손녀처럼 귀여워해주시고 아라비아에서 온 투명 유리잔을 하사해 주시어 어머니께 보내 드린 적이 있고 동네 사람들이 신기해 하며 구경하였습니다.

 순장의 날 나는 너무나 두렵고 슬펐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고 나를 사랑했던 경윤 오빠 생각이 너무 간절했습니다. 그때는 도망이라도 쳐서 생명을 부지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답니다. 실제 나의 동려 순장녀 후보는 달아났다가 잡혀 죽임을 당했고 더러운 몸이라 하여 순장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한 동료는 달아나서 신라에 건너갔다는 후문이 있었으나 그 후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미 150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지금 순장이란 말에 너무 마음이 아파 마세요.
드디어 신라 지증왕 마립간 3년 (502)에는 순장을 법으로 금하였습니다. 나의 순장 시기는 거의 마지막의 것이었지요. 평소 꿇어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나의 무릎 뼈는 많이 혹사당한 편이었지요.

순장의 그날 초가을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햇살은 눈부시었습니다. 그 푸르른 하늘이 나에겐 눈물의 바다였습니다. 흙을 파고 있을 때 무덤 건너편 저쪽에는 유족들이 울고 한쪽에는 북을 쳤으며 희는 춤을 추었으며 나는 내려치는 칼을 받았는데 그 심경을 어떻게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칼날이 내 목덜미를 내려칠 땐 아프다가 곧장 몸과 마음이 나른하고 편안했으며 그 이후는 모르겠습니다. 나의 가족들은 통곡하며 몸부림쳤고…… 그러나 생각해 보면 순장은 극도의 두려움과 어두움이지만 편안함과 밝음도 있었습니다. 사후세계를 여기서 말할 수 없음을 이해 바랍니다.
 

 1500년이나 지난 오늘날 내가 재현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고 이렇게 재현될 수 있었습니다. 순장이 극히 드문 일이듯 재현 또한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21세기 오늘날 고도로 발달된 과학과 복원 기술에 의해 다시 태어났습니다. 오직 뼈만을 가지고 재현된 나의 모습이 거의 닮아 있는 것을 보며 나는 너무나 놀랍고 신기하게 느낍니다.
 

 해설가들은 키 153.5cm의 나를 균형이 잘 잡힌 팔등신 미인으로 평가하더군요. 목이 긴 아름다운 송현으로……. 하기야 내가 자란 감분 마을에서 가장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그런 계기로 14살에 궁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가야금과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춤을 배우기도 하였고 어른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여인들도 보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였답니다. 복숭아, 배, 감 등 과일과 고등어, 갈치, 돔, 넙치 등 해산물을 즐겨 먹고 나의 귀고리로 짐작할 수 있듯 귀고리, 목걸이, 팔찌로 외모 꾸미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간간이 팔에다 꽃 모양의 예쁜 문신을 하기도 했었지요.
 

 나는 15살 적 어머니의 병환으로 궁중에서 잠시 고향에 들렀을 때를 잊지 못합니다. 어릴 적 나보다 3살 위의 이웃 오빠 경윤이는 나를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경윤이와 나는 합환(결혼)의 뜻이 있었으나 내가 궁녀 신분이었기에 우리를 슬프게 하였습니다. 따라온 나이 많은 궁녀의 감시를 받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에도 도자기 굽는 가마 뒤에서 나의 손을 꼭 잡아 주고 포옹하던 기억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내 마음은 콩닥거렸고 매우 설레었습니다. 결국 경윤 오빠는 다른 규수와 합환하였고 43세라는 제법 오랜 나이를 살아 내 몫까지 살아 준 셈입니다.
지금의 21세기는 얼마나 많은 자유를 가지고 살아가는지요. 내가 살던 그 시대 사람들이 나처럼 재현되어 온다면 모두가 놀랄 것입니다. 지금의 사회도 옛날 같은 그런 제약은 없지만 또 다른 제도의 얽매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제약은 현대인들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더군요. 중산충의 몰락과 양극화에서 오는 고통은 예삿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에 비해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더 편하지 않더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권력자의 무한 탐욕이 낳은 순장 제도처럼 강자 독식 유지르 위한 자본주의 무한 탐욕이 주는 또 다른 형태의 순장과 옥죄임은 도처에 있더군요.
 

 학자 교육자 정치가들은 이런 점을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인데 유럽 선진국에 비해 그런 고민이 얕은 우리나라가 걱정입니다. 국민의식이 높아져야 하는데 이끌고 깨우쳐야 할 챔임을 진 언론, 특히 거대 언론이 모른 척하고 있더군요. 가진 자들의 집단적 이기주의라 할까요. 온갖 이념이나 종교의 변질 등으로 사람을 옥죄이려는 현상이 예삿일이 아니더군요.

‘내 속의 족쇠 덩이 지금은 무엇인가’
‘금전인가 종교인가 물질과 정신세계’
‘진리가 자유라면 족쇠는 진리의 적’
‘그립다 자유천지 행복한 그곳이여’

 이제 사회로부터 또 다른 현대판 순장이나 희생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모두 행복하게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하여……. 내가 살던 그 마을은 아파트촌으로 변했더군요. 마타리꽃 옆에서 뛰놀던 감분마을과 가야 궁중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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