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식 칠산행정사 사무소 대표 행정사

이홍식 칠산행정사 사무소
대표 행정사

 삼겹살과 소주 한 잔으로 대표하던 우리의 회식문화가 바뀔지도 모른다. 중국 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으로 돼지고기값이 들썩이고 있는데다 소주값 인상 소식까지 들려오니 샐러리맨들의 낙이었던 퇴근길 소주 한 잔도 어렵게 된 것이다. 퇴근길에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 한판 구워놓고 소주 한 잔 마시며 시시콜콜 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애환과 스트레스를 날리는 그런 퇴근길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언제부터 삼겹살을 즐겨 먹었을까?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던 문화는 고구려 때부터 있었다. 그때는 주로 양념구이로 해 먹었고 삼겹살처럼 생고기를 굽는 형태는 아니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고기는 보통 삶거나 찌거나 국으로 끓여 먹었으며 만두처럼 다른 음식에 첨가해서 먹었지 구워서 먹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또한 돼지고기는 인기가 없었는데  태종실록에도 명나라황제가 조선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대목으로 보아 조선시대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여름에 먹는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선입견이 있어 돼지고기를 조리하는 요리법도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차대전 이후 일본에 돈가스 요리가 유행하면서 돼지고기의 수요가 증가하였고 환경문제 등으로 일본에서의 돼지사육이 여의치 않자 일본의 육류업자들은 우리나라의 항구도시 중심으로 많은 돼지사육장을 만들었다. 그리곤 돈가스용으로 사용되는 안심, 등심들은 일본으로 가져가고 비계가 많은 부위는 한국에서 소비하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돼지고기를 주로 삶아서 새우젓이나 김치에 싸 먹곤 했는데 1970년대에는 서울 마포를 중심으로 돼지갈비구이가 유행했었다. 그러다가 돼지갈비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탄광촌 광부, 건설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삼겹살이 대체식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삼겹살이 국어사전에 등재된 것이 1994년이라니까 우리국민이 삼겹살을 즐겨 먹은 시기가 그리 오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삼겹살이 인기를 끈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상하기 쉬운 돼지고기를 오래 저장 할 수 있게 되었고, 연탄불 화덕에서 가스렌지 사용으로 조리법과 기구들이 발달하면서 돼지고기와 관련된 음식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무엇보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 사회적인 발전과 함께 육류소비가 늘어나게 되고 정부의 양돈장려정책 등으로 돼지고기 공급이 확대되면서 값싼 삼겹살이 우리 국민의 대표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싸고 투박한 매력으로 우리를 위로해 온 것은 소주다. 원래 우리나라는 농사로 얻은 수확물로 술을 빚어 마셨다. 그러다 일본정벌을 위해 고려로 온 몽골군들이 자신들이 마실 소주를 빚게 되면서 소주의 제조법이 전해졌다고 한다.

 몽골군이 물러간 뒤 소주는 고려 상류층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조선조에도 그 풍습은 여전 했던 것 같다. 세종 때도 사대부 집안에서는 소주를 드물게 썼는데  성종 때는 극히 사치스러운 소주를 민가에서 만들어 마실 수 없도록 영을 내려야 한다는 진언도 있었으며 단종실록에는 대신들이 허약하고 어린 단종에게 소주를 약으로 마실 것을 권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고 보니 소주가 상당히 귀한 술로 인식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965년 전국적인 식량부족으로 쌀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면서 값싼 녹색병의 소주시대가 도래 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소주는 서민의 대표 주류로서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지금도 국민의 대다수가 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소주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미 우리나라에서의 소주는 술 이상의 의미로 사람들의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기름값이 인상되고 세탁세제와 우유, 화장지는 물론 고추장과 된장까지 올랐다. 서민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가격 인상 품목들이 줄이려 해도 줄일 수 없는 생활필수품들이기 때문이다.  고용여건의 악화로 가뜩이나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팍팍한 삶의 시름을 달래주던 소주와 삼겹살 가격까지 오르니 심적 허탈감은 더 커 질수 밖에 없다. 퇴근길에 부담 없이 삼겹살 구워놓고 소주 한 잔 기울이던 옛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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