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밀린다 왕문경(王問經)』에는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북인도를 지배했던 그리스 사람인 밀린다왕과 당시 유명했던 나가세나 스님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스님에게 "스님, 부처님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나가세나 스님은 "없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실제로는 없는 겁니까?" 그러자 스님은 "왕께서는 히말라야 산중에 있는 우하강을 본 적이 있습니까?"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우하강은 없는 것입니까?" 스님의 질문에 왕은 "아닙니다. 우하강을 직접 본 적은 없으나 분명히 실제로 있는 강입니다." 왕의 말에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부처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분명히 부처님은 실제로 살아 계셨던 분입니다." 이처럼 왕과 스님과의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부처님이 실존 인물인가에 대한 논쟁은 약 2천 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알로이스 퓌러가 네팔의 룸비니에서 발견한 돌기둥에 옛 인도의 언어인 브라미(Brahmi) 글자로 쓰여 있는 다섯 줄의 글을 발견하고 세상에 소개하면서 그동안 부처님이 역사적 실존 인물인가? 아니면 신화로 꾸며진 이야기인가를 두고 지속 되어온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돌기둥에 적힌 내용을 보면, "신들의 사랑을 받는 피아다시왕이 즉위 20년에 몸소 이곳에 와서 참배했다. 여기에서 붓다 사카무니가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에 돌 울타리를 만들고 석주를 세웠다. 여기에서 세존이 탄생하셨기 때문에 룸비니 마을은 조세가 면제되고, 생산의 8분의 1만을 지불하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피아다시는 기원전 3세기 인도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우고 불교를 널리 전파한 아쇼카왕입니다. 그래서 이 돌기둥을 아쇼카 석주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내용은 7세기 인도로 건너가 불교를 배우고 돌아왔던 당나라 승려 삼장법사 현장이 쓴 『대당서역기』에도 등장하는데, "사천왕이 태자를 받들었던 스투파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돌기둥이 있다. 위에는 마두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바로 아쇼카왕이 세운 것이다. 후에 사악한 용이 벼락을 일으켜서 그 기둥 가운데를 부러트려 땅에 쓰러지게 하였다."라는 아쇼카 석주의 소개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태자는 바로 붓다를 말하며 이 기록은 붓다의 탄생 위치를 알아내는데 귀중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많은 서구의 학자들이 붓다가 실제 인물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는데, 그 이유는 경전에 등장하는 부처의 모습과 가르침이 정교하고 놀라워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비쳤었기 때문입니다.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고,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침은 붓다가 신화적인 인물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동북아시아에 유포된 대승불교는 부처님을 본격적으로 신격화 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인격적인 신의 존재인가, 아니면 역사적 실존의 인물인가에 대한 구별은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부처님이 실존했던 인물이라면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가정이 현실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에게 "성불하세요"라는 덕담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부처님이 열반한 후 2500년이 지났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깨달았는가? 그리고 지금 현재 이 세상에 깨달은 사람이 얼마나 존재하는가를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은 대단히 옹색해집니다. 부처님은 당시 모든 수행법을 직접 체험했지만, 그런 것들이 깨달음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방법을 발견하고 전국을 고통과 인내를 견뎌내며 평생을 유행하면서 중생들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제자를 자청하는 '현대의 붓다'는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현대의 붓다'가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2500년 전 붓다의 언행을 잘 알고 있습니다. 45년 동안 인도 전역을 돌면서 어떠한 질문도 피하지 않았으며, 가르침을 원하는 어떤 사람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붓다'는 대중의 의문을 뻔히 알면서도 참선 수행만이 제 할 일이라며 침묵하고 있고, 진리를 논한다면서 수백 년에서 천년이 넘게 전해져 온 케케묵은 과거의 언어만 끄집어내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만 벌이고 있습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자비는 부처님의 몫인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보시는 자신이 아니라신도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우기며 양심을 속이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은 수행 정진을 하는 '현대의 붓다'에겐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심지어 큰스님으로 불리는 어떤 한심한 '현대의 붓다'는 강연료의 적고 많음을 시비 삼아 법문 요청을 거절하는 상스러운 꼴을 보여줍니다. 불기 2563년 부처님 오신날에 즈음하여 부처님을 닮은 '현대의 붓다'가 많이 강림하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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