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버서 할 말도 없는데

김길자 외 지음 / 호밀밭 / 265p / 1만 6천 원

 이 코너를 통해 소개했던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책이 있다. 전남 순천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 스무 분의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이다. 그 책 소개가 나간 뒤 김해에서 두어 통의 전화가 왔다. 할머니들이 직접 글을 쓴 것인가, 혹시 할머니들이 구술할 때 받아쓴 것이 아닌가, 어르신들이 글을 쓰게 하고 모을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면 좋을까 등.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김해에서도 곧 어르신들의 삶을 담은 책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해 어르신들의 삶을 담은 책을 구상하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또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근대수리조선의 1번지인 부산 영도 깡깡이 마을에서 일평생을 보내신 여섯 분의 어르신들의 자서전이 나왔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자신들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여섯 분의 자서전이 책 한 권에 담겼다. 깡깡이 예술마을사업단이 진행한 어르신들의 자서전 프로젝트에는 김길자, 김부연, 김순연, 박송엽, 서만선, 조창래 여섯 분이 참여했다.

 영도 대평동 출신의 정우련 소설가가 매주 어르신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끌었다. 두레밥상에 모여 앉아 정을 나누는 것처럼 자서전 동아리방에 둘러 앉아 있으면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어르신들 모두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아 도저히 중간에서 끊을 수가 없었단다. 어르신들은 지난 시간을 더듬어 '나와 내 집안의 연대표'도 만들어보고,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시기별로 글감을 가지고 일주일 동안 집에 가서 써왔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글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삶의 이야기, 지나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옛사진, 직접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시화작품을 보노라면 마치 인생극장을 보는 기분이 든다. 맞춤법이 좀 서투를지는 몰라도 진실하고 솔직한 글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사진으로 찍어 수록한 시화작품의 소박한 그림과 삐뚤삐뚤한 글자는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

 자서전을 쓴 어르신 중 김순연 할머니는 김해 출신이다. 김 할머니는 자서전 첫 문장에서 김해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 생생한 기억을 읽노라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김 할머니의 마음도 느껴진다. 그 글을 그대로 소개한다.

 "내가 태어난 곳은 김해군 김해읍 화목동이다. 지명은 갈밭섬이라고도 하고 창발섬이라고도 한다. 집 앞에 낙동강 줄기 강이 있어 강물을 먹고 살았다. 여름이면 멱감고, 겨울이면 얼음이 얼어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 아버지가 먼저 강을 건너보고 우리보고 놀아도 된다고 하셨다. 강을 건너다가 넘어져서 정신이 혼미한 적도 있었다. 저녁때가 되면 우리 집 쪽은 양지쪽이라 얼음이 녹아서 건너기가 힘들었다. 건너다가 물에 빠져서 바지가 다 젖어서 옷을 말리느라 양지쪽에 가만히 서 있기도 했었다. 밤이면 얼음을 깨어 가지고 와서 먹기도 하고 무를 깎아 먹기도 하고 놀다가 잤다. (중략) 메뚜기 잡아서 볶아서 반찬하고 우렁이 잡아서 된장찌개 해 먹고 살았다. 고향에서 보낸 나의 유년시절은 그래도 좋았다."

 김 할머니 모시고 갈밭섬 이야기 오래 듣고 싶어지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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