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원래 불모산의 이름은 쇠붙이를 다룰 때 바람을 일게 하는 기구인 풀무의 옛말에서 연유했다는 주장이 있다. 불모산 자락에 자리잡은 장유암은 가락국 허황옥의 오라버니 장유화상(허보옥)이 창건한 고찰이다.
 
 허황후는 10왕자 2공주를 낳았는데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 둘째 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7왕자는 장유화상을 따라 가야산 지리산을 전전하며 수도하다 성불하여 7불이 되었다.

 장유암 뒤편에는 장유화상 사리탑과 사적비가 있다. 요사채 오른쪽 아래에는 허황후와 함께 온 아유타국 사람들이 쌓았다는 높이 5m의 축대가 서 있다.
 
 가야국에 얽힌 이야기는 신비의 제국이란 말이 있듯 가야사는 빈약한 기록과 자료에 의해 체계적인 문학적 정립이 저조한 연유로 중구난방으로 의외의 주장이 난무해 왔다. 그러함에도 그간의 가야사 연구는 후학들에 의해 괄목할 만한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대성동 고분과 대동면 예안리 고분 인골에서 상당수가 남방계열 DNA라는 중간 보고가 있다. 특히 가야의 언어와 문화를 저술한 언어학자 정호완의 연구 내용에 지금도 남아 있는 가야의 지명과 언어 등에서 인도의 고대 언어 흔적이 즐비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때 감병모 교수 등에 의해 중국 산동성 도래설이 있었으나 최근 인도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다.

 본인의 생각에도 삼국지 동이전 변진조 기록에도 있듯이 중국 상인들이 가야가 성립되기 전 삼한 시대 변한 말 구야국이었던 김해에 배로 상륙해 보니 사람들의 외모가 장대하고 문신을 했으며……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인도의 아리안 족들이 이곳에 많이 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가야무도 인도 무용의 영향을 받았음을 후학들에 의해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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