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장/ 남명학 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장/남명학 박사

 남명문집에 양산 쌍벽루(雙碧樓)에 대한 시가 있다. 산해정 앞 강에서 배를 타고 건너면 지금의 양산(양주) 북부동에 있는 누각으로 조선시대 목조 누각으로 남명이 찾아가서 시를 지었다. 쌍벽루(雙碧樓)는 양산 관아 서쪽에 있었으며, 누각 아래 푸른 물과 푸른 대나무가 서로 비추어줌으로 쌍벽루라 하였다고 한다. 쌍벽루는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곳이어서 많은 시인들이 시를 남겼다. 특히 김극기(金克己)[1379~1463]와 명(明)나라 사람 장청(張淸)의 시 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

 차 양산 쌍벽루 운(次 梁山 雙碧樓韻)

 푸른 물 푸른 대나무에 달빛이 흐를 때    
 떨어지는 차가운 잎에 계수나무 이우는 가을  
 양주 강가엔 제사 지내는 사람 없네              
 눈에 가득한 돌아가는 구름 내 시름만은 못하네. 

 김해 대동 앞 낙동강은 당시 황산강(黃山江)으로 구포를 거쳐서 다대포로 흐르는 강줄기다. 강 건너 양산 물금 앞 강가에는 신라시대 사독(四瀆)의 하나였는데, 예전에, 나라의 운명과 관련이 깊다고 여기던 네 강. 조선 시대에는 낙동강(洛東江), 대동강(大洞江), 한강(漢江), 용흥강(龍興江)으로 네 방위를 따라 정하여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신라가 망하고 나니 술 부어 신에게 제사 지낼 사람이 없으니 세월이 무상함을 느껴 시름에 잠긴다고 하여 하늘에 가득한 구름도 내 시름만 못하다는 심정을 나타내었다. 이 시름은 신라가 망한 자리를 조선도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심사가 있었다고 짐작해 본다.
 조선시대 주요 문인으로 김종직의 시를 보면,

 양산의 쌍벽루에서 차운하다[梁山雙碧樓次韻]

 물결 빛 대 그림자 굽은 난간 가에 앉아        波光竹影曲欄邊
 술동이 두고 오래 노닐며 성현을 즐기노니      樽酒留連樂聖賢
 좋은 경치 만나매 지난 일 슬퍼할 것 없고      攬景不堪傷往事
 높은 데 앉으매 다시 신선을 부르고 싶네       憑危更欲喚飛仙
 강산은 내가 낯선 손이 아님을 허여하는데      江山許我非生客
 고관들은 저문 해에 관심이 전혀 없구려        軒冕無心有老天
 달 밝은 밤까지 그대로 기둥 기대 있자니       向夜月明仍倚柱
 시끄러운 철적 소리가 요전을 지나가누나       如轟鐵笛過瑤田
 

 쌍벽루(雙碧樓)는 양산 관아 서쪽에 있었으며, 누각 아래 푸른 물과 푸른 대나무가 서로 비추어줌으로 쌍벽루라 하였다고 한다. 쌍벽루는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곳이어서 많은 시인들이 시를 남겼다. 특히 김극기(金克己)[1379~1463]와 명(明)나라 사람 장청(張淸)의 시 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

 그외 쌍벽루를 환상의 공간으로 그리고 있는 장청의 시는 다음과 같다.

“석양에 말을 채찍질하여 양주에 당도할새/ 승경을 만나 높은 데 올라보니 흥이 한결 새롭구나/ 천 겹의 병풍을 두른 듯한 산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데/ 거울 같은 둥근 물은 맑은데 비늘 물결이 일어나구나/ 물가 버들 빛은 처음으로 실가지가 늘어졌는데/ 좁은 기슭의 복숭아꽃은 아직 고루 붉지 못하였다/ 뭍을 돌아보니 단청이 찬란하여 형용하기 어려운 이곳에/ 많은 군자가 붓을 휘둘러 홀로 신묘함을 전하고 있구나
 
“멀리서 듣건대 쌍벽루 큰 제방 가에는/ 긴 대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죽림칠현이 노닌다던데/ 난간에 기대어서 시를 읊으니 오로지 운치를 얻겠고/ 누각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과연 등천하는 신선이로다/ 산은 벽해에 이어져 삼도가 가까이 다가오는데/ 물은 은하에 접하여 구천에 멀리 떨어졌도다/ 오늘 그대와 함께 같은 감개에 잠기고 있으니/ 홀로 우리들이 전원에 돌아가 시부 읊기가 부끄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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