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선비문화 10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
남명학박사

  산해정의 외로움과 간난을 위로하는 벗이 매화로다

 선비가 매화를 사랑하는 것은  가난하여 홀로 서기 어려운 시대에 벼슬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겨울을 견더야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을 가장 벗어나고픈 심사를 매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명이 산해정서 지내온 18여 년간의 생활이 가정적으로 순탄하지 못하여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부족한 마음을 은연중에 눈 속의 매화로 표현한 시를 보자.


 설매(雪梅)

 한해가 저물어 홀로서기 어려움 알겠는데
 밤새도록 내린 눈이 새벽까지 오네
 선비 집 외롭고 가난한지 오래되었는데
 네가 돌아오니 다시 반갑기 그지없도다.

 歲晩見渠難獨立 / 雪侵殘夜到天明 / 儒家久是孤寒甚/ 更爾歸來更得淸.

 산해정에서의 봄소식을 맨 먼저 매화를 보고 느꼈으니 마음이 서래일 듯하다. 이 소식을 친구 숙안(叔安, 호) 박흔(朴?)에게 전하면서 시 한수를 지었는데, 박흔에 대한 신상은 알 수 없으나 달빛이 받고 향기를 주는 매화를 보고 봄소식을 맨 먼저 알릴만큼 매우 절친한 사이가 아닐가? 아마도 저세상 사람인지도 모르는 친구인지도 모른다.

 
 숙안에게 부침(寄叔安)

 매화나무에 봄기운이 감돌고
 가지사이엔 새 노래소리 따스하구나
 산속의 달은 산해정을 환히 비추는데
 어떻게 하면 그대 불러 마주할 수 있을까?.

 梅上春候動 / 枝間鳥語溫 / 海亭山月白/ 何以坐吾君.

 한편 산해정에 남명의 高弟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1536~1623)이 병인년에 보름간 선생을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내암이 서울로 갈 때 남명이 격치성정가(格致誠正歌)를 손수 써주신 '대학팔조가후'가 유명하다. 내암은 15세에 합천 삼가 '뇌룡정' '계부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칠 때 급문을 하였다. 스승의 모든 업적과 사실을  스승 사후 행장을 짓고 남명집을 주관간행하는등 문묘제향에 적극 추진하고 벼슬에 나아가서는 올곧은 선비의 자세로 임하였다.
 
 1592년 왜란이 일어나자 57세 나이로 동년 5월 10일 김면과 함께 회합하여 경상우도 전역에 산재해있는 자신의 문인을 주축으로 대대적인 창의로 큰 전공을 세웠다.

 재산해정서대학팔조가후(在山海亭大學八條歌後)

 한평생 근심과 즐거움 둘 다 귀찮은데 / 선현들 있는 덕분에 깃발을 세워 두었네

 저술하고자 해도 학술 없는게 부끄러워/ 억지로 회포를 긴 말에 부치노라.

 一生憂樂兩煩寃 / 賴有前賢爲竪幡 / 慙却著書無學術 / 强作襟抱寓長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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