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논설위원

 공자가 재나라 국경을 지나다가 뽕을 따는 두 여인을 보았는데 동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얼굴이 구슬처럼 아름답고, 서쪽에서 뽕을 따는 여인은 박색이었다.
  
 공자가 이 광경을 보고 농을 하기를 '동지박 서지박(東枝璞西枝縛)' 이로고. 즉 동쪽 가지는 구슬박이고 서쪽 가지는 얽은 박이라는 뜻이다. 이러자 서쪽 여인이 공자를 힐끗 보더니 '건순노치칠일절양지상, 이백어면천하명문지상 (乾脣露齒七日絶糧之相, 耳白於面天下名文之相)'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재치 있게 받아넘겼다.

 즉, 입술이 바짝 마르고 이빨이 툭 튀어 나온 게 7일간 굶은 상인데, 귀가 얼굴 색보다 흰걸 보니 문장만은 천하에 알려질만 하겠군. 이라고 공자의 관상을 한눈에 파악하였다. 아마도 공자의 모습을 최초로 말한 여인이 아닐까.

 공자는 머리에 상투를 얹고 수염을 기르고 긴 도포를 입으며 양손을 공손히 모우며 근엄한 모습을 그림으로 본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가 니구산(尼丘山)에서 산신 기도 끝에 임신했다고 해서 니구 라고 했다는 설이 있는가하면 공자의 머리 정수리가 움푹 들어간 절구 모양이라 하여 '니구'라는 아명을 지었다고도 한다.

 추측해 보면 머리를 말아올려 상투를 트는 것은 움푹 들어간 정수리를 감추려는 의도에서 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 풍습이 있지 않을가 한다. 후대에 와서 머리털 하나라도 부모에게서 받은 소중한 것이므로 함부로 자를 수 없다하여 기르는 풍습이 서구 문화 유입으로 단발령이 시행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된 것이다.

 아무튼 공자는 실없이 던진 농으로 여인으로부터 무안을 당하여 황급히 길을 재촉하다가 국경 지대서 재나라 수비 군사에게 잡혔다. 천하의 대성현을 몰라본 군사는 확인하는 차원에서 공자를 심문한다. "선생이 노나라 성현 공자라면 보통 사람과 다른 비범 한데가 있을 터인 즉 구명이 아홉개 뚫린 구술을 명주실로 한번 만에 꿰어 보라"고 하였다. 연 나흘간 애써 해보았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하는 수 없어서 제자를 조금 전 만난 여인이 한 말이 생각나서 보냈다.

 제자가 가서보니 여인은 안보이고 짚신만이 뽕나무에 가꾸로 걸려있었다. 이 사실을 공자에게 전하자 공자는 무릎을 치며 계혜(繫鞋)촌을 찾아 가보라고 지시했다. 제자는 한참 만에 마을로 찾아가 여인을 만나 그간의 사정을 말하자 여인은 양피지에 밀의사(蜜蟻絲)라는 글자를 적어 주었다. 글을 받아 본 공자는 또 한번 탄복하며 꿀과 개미 한마리와 실을 가져오게 하였다. 개미 뒷다리에 명주실을 묶어놓고 구술 구멍에 꿀을 발라서 하룻밤을 지내니 개미가 구술을 다 꿰어 놓았다. 그날은 공자가 끼니를 거른 지 7일째 되는 날이 되었다. 공자는 여인의 말에 깊히 감동하고 사물에 대한 깨우침(格物致知)에 통달하였다. 자신의 지혜가 한 여인의 지혜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공자는 격물치지의 논리를 정립하여 70이 되어서야 여인이 말한 아홉 개의 구멍에 대한 이치를 깨달았다.

 사람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태어나서 두 눈으로 바로 보고 두 귀로 바로 듣고 두 코로 냄새를 판단하고 입으로는 바르고 맑은 소리를 내고 두 구멍으로는 대소변을 막힘없이 배설 한다면 아홉 개의 구멍의 이치를 70이 되어서야 알았다고 해서  이 나이를 '從心所慾不踰矩'라 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도 규범에 저촉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런 지혜를 암시해준 이름 모르는 여인이 공자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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